캉토로프 "빗속에서 피아노 연주한 파리올림픽, 특별한 순간이었죠"

입력 2024-09-11 17:08
수정 2024-09-12 00:22

“빗속에서의 피아노 연주, 제게도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죠.”

지난 7월 26일 근대 올림픽 128년 역사상 최초로 야외, 그것도 프랑스 센강을 무대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 등을 연주하며 전 세계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7)는 이렇게 말했다.

9일 밤 프랑스 현지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보안상의 이유로 6~7시간 갇혀 있어야 했고, 연주 전 15분 정도 밖에서 대기했기에 이미 온몸은 흠뻑 젖은 상태였다”며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라벨의 ‘물의 유희’란 작품을 햇볕 아래에서 연주했다면 이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얻지 못했을 텐데 빗속에서 연주했기에 더욱 뜻깊은 무대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프랑스가 자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20대 젊은 피아니스트를 내세운 데엔 다 이유가 있다. 2019년 세계적 권위의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프랑스인 최초의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쥔 데 이어 대회 전 부문 대상(大賞)인 ‘그랑프리’까지 휩쓴 상징적인 인물이라서다.

그가 한국을 찾는다. 다음달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 두 개의 랩소디 중 1번,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번 ‘눈보라’,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1번 등을 들려준다.

캉토로프는 “한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기보단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그 사이의 연결성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며 “이번 공연은 피아니스트에게 각기 다른 형태의 비르투오소 면모와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들로 채웠다”고 했다.

캉토로프는 프랑스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장자크 캉토로프는 오베르뉴 체임버 오케스트라,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고, 어머니도 바이올린을 전공한 연주자다. 그에게 왜 바이올린이 아니라 피아노를 선택했냐고 묻자, “피아노가 바이올린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장난스럽게 답한 그는 이내 “두 악기 모두 배워봤지만 나의 마음을 끄는 건 피아노뿐이었다”고 답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신예’였지만 이제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적 악단들과 협연하는 정상급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환생”(미국 팡파르), “시적인 매력을 가지고 불을 내뿜는 거장”(영국 그라모폰) 등 해외 유명 클래식 전문지들이 연달아 극찬을 쏟아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좋은 평을 받고 연주자로서 훌륭한 수식어를 얻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난 그저 ‘진실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캉토로프는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 미하일 플레트네프 같은 대가들의 이름을 들면서 “영원히 내면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자신들의 감정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해 온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자신만의 느낌으로 곡을 재해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하며, 음악적 본능을 깨우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겁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피아니스트지만 스웨덴 명문 음반사 BIS와 작업한 앨범들로 황금 디아파종상 등 국제적 권위의 음반상을 휩쓴 인물로도 유명한 캉토로프. 오는 11월 ‘브람스-슈베르트’란 명칭의 새 음반 발매가 예정된 그는 최근 고민거리로 ‘부족한 연습 시간’을 꼽기도 했다. “바빠지면서 이전처럼 마음껏 연습할 수 없는 건 아쉬워요. 요즘엔 혼자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이 제게 가장 각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예요.(웃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