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울게 된다"…로스코와 이우환의 특별한 조우

입력 2024-09-11 17:10
수정 2024-09-12 07:20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반응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가 마크 로스코(1903~1970)다. 미술 애호가의 로스코 사랑은 그야말로 열렬하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환기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그의 열광적인 팬이다. 작품값은 기본이 수백억원대. 1000억원을 넘긴 작품도 있다.

천문학적인 가격보다 더욱 특별한 건 “작품에 감동해서 울었다”는 증언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반면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실제로 작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 화면으로 봤을 때 로스코의 작품은 그저 두세 가지 색이 뭉텅이로 칠해진 캔버스일 뿐이라서다.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2~3층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와 이우환의 2인전 ‘조응’은 그래서 드문 기회다. 갤러리 2층에서는 볼 기회가 잘 없던 로스코의 작품을 국내에서 여섯 점이나 볼 수 있다. 로스코 재단에서 빌려온 이 작품들은 함께 전시를 여는 이우환 화백(88)이 골랐다.




로스코 전시가 열리는 2층 전시장은 어둡다. 이유가 있다. 로스코의 목표는 그림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관람객이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아무 모양도 없는 그림’을 그렸다. 작품에 어떤 모양을 그려 넣는 순간 관람객은 ‘그 모양이 무엇인지’만 궁금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로스코는 작품 속 색상과 구성은 물론 작품 외적인 감상 환경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핵심 중 하나가 색채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조명을 어둡게 유지하는 것이다. 로스코의 유족이 기획에 참여한 이번 전시에도 마찬가지 연출이 들어갔다.

전시장에서 만난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아버지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사실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발견한 슬픔이나 감동 때문에 우는 것”이라며 “비록 작품은 많지 않지만 아버지 그림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고 말했다.




반면 전시장 3층에서는 밝은 빛이 쏟아진다. 이곳에서는 이우환의 대형 작품 다섯 점을 만날 수 있다. 색채를 통해 내면을 돌아보게 한 로스코의 작품들에 맞춰 색채가 두드러지는, 하지만 빛과 어울리는 작품이 주로 나왔다. 리움미술관 소장품도 한 점 섞여 있다.

마크 글림처 페이스갤러리 대표는 “오래전부터 이 전시를 기획했다”며 “동서양 거장의 작품을 비교해가며 함께 감상할 기회”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2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