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치 '급발진 의심사고' 분석해봤더니…'깜짝 결과'

입력 2024-09-11 16:14
수정 2024-09-11 16:41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근 5년간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를 조사한 결과 분석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된 원인은 모두 '페달 오조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국과수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 분석 현황'을 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364건의 급발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국과수가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차량이 완전 파손돼 분석이 불가능했던 일부를 제외한 321건의 사고는 모두 운전자 페달 오조작이 원인이었다.

업계 "잘못된 주장 바로잡아야"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종종 나왔는데, 조사 결과 실제로는 페달 오조작으로 밝혀진 사례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유럽연합유엔경제위원회(UNECE) 주관 분과 회의에 참석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기차 택시를 몰던 65세 남성은 서울 시내를 주행하던 중 담벼락을 들이받고서 "우회전 중 급발진이 발생해 브레이크를 여러번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달 블랙박스 등을 분석했더니 운전자 주장과는 달리 우회전한 뒤 3초간 30m를 달리는 와중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뗐다를 6번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발생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도 그렇다. 검찰은 과학 수사를 토대로 사고 원인을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보고 운전자를 구속 기소한 바 있다. 추후 재판 결과가 남은 상황에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사고기록장치(EDR)나 폐쇄회로(CC)TV를 비롯한 신발 바닥의 패턴 흔적 등으로 보아 운전자 페달 오조작 사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자동차 업계는 급발진 주장 사고가 경찰 수사나 국과수 등의 조사에 따라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가 분명함에도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여론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에선 우리나라 같은 급발진 이슈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례로 일본에선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란 용어 대신 '급가속' 또는 '페달 오조작 사고' 등의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2012년부터 인구 고령화에 따른 페달 오조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달 오조작 방지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 또한 급발진이라는 말 대신 '의도하지 않은 가속'이라고 쓴다. 미국에서는 아직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없다고 알려졌다. 2009년 발생한 '도요타 급발진 사건'도 전자계통 오류가 아닌 가속페달 문제로 결론이 났다. 이후 급발진 현상을 '페달 끼임 현상'으로 판단하는 시각이 확산됐다고 한다. "자극적 영상에 확증편향...과학적으로 접근해야"전문가들은 급발진 주장이 대부분 운전자 본인이 작동시키고 있는 페달이 브레이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특히 차량 결함에 의해 급발진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증편향'이 오히려 사고 발생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나 유튜버 등이 내놓는 자극적인 급발진 영상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순간적으로 본인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급발진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감정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있다.

교수, 정비 명장, 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EDR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잘못된 편향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EDR은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사고 시점 이전 5초 동안의 각종 데이터를 휘발성 메모리에 기록·저장하는 구조다. EDR에 기록이 필요한 정보들은 각각의 제어기로부터 수신하고, 사고 차량의 EDR 분석의 핵심인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에 대한 정보 역시 각각 분리돼 수신된다. EDR로 데이터를 보내는 각각의 모든 제어기가 한꺼번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제어기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EDR에는 '고장' 또는 '유효하지 않은 데이터'로 기록된다.

업계 관계자는 "급발진 주장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밟고 있는 페달에서 발을 떼라'라는 인식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