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대로 두면 큰일난다"...국제기구의 '경고'

입력 2024-09-11 09:02
수정 2024-09-11 10:29


한국의 급증하는 가계부채가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국제기구 분석이 나왔다. 과거 부채가 성장을 촉진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정례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BIS는 먼저 2000년대 초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대부분 신흥국에서 민간신용이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민간신용은 금융기관을 제외한 기업, 가계 등 민간 비금융부문의 부채를 의미한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2000년 이래 1.3배 이상 올랐다, 중국에서는 이 비율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물론 민간신용 증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채가 늘면서 자금 조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다. 실물자산이나 교육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성장에 기여하기도 한다.

다만, 민간신용 증가만으로는 성장을 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정 수준 이상에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고 BIS는 보고서에서 강조했다.

부채와 성장의 관계가 처음에 정비례하다가 어느 순간 꼭짓점을 찍고 반비례로 돌아서는 '역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빚을 내서 소비를 늘리면 단기적으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채 상환과 이자 지급 부담 때문에 미래 성장 잠재력이 약화할 수 있다.

BIS는 "대부분의 신흥국은 아직 민간신용 증가가 성장을 촉진하는 영역에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을 저해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경우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100% 선을 웃돌면서 경제성장률도 정점을 찍어 역 U자형 곡선과 일치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222.7%(BIS 기준)에 달해 100% 선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이 중 가계부채가 100.5%, 기업부채가 122.3%였다.

BIS는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주택 수요가 느는 동안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업종에서 건설·부동산업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건설·부동산업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해당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 쏠림이 성장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비중이 더 많이 증가한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과 노동생산성 감소는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이런 신용 재배분은 과잉 투자를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나중에 관련 대출 증가가 둔화한 뒤에도 생산성과 성장에 지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BIS는 분석했다.

BIS는 "역 U자형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다"며 "정책 대응을 통해 민간신용의 성장에 대한 역 U자형 관계는 개선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불균등한 신용 증가의 완화, 주식시장의 역할 확대, 핀테크를 통한 금융중개 기능의 발전 등으로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신용이 유입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BIS의 경고는 최근 통화정책에서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위험을 핵심 고려 사항 중 하나로 설정한 한국은행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하며 "부동산 가격과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위험신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손쉽게 경제를 이끌어오던 과거 정책 대응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그런 고리는 한 번 끊어줄 때가 됐다"라고도 했다.

이 총재는 BIS 총재 회의에 참석한 뒤 이날 귀국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