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플래닝]
자녀에 대한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에 대한 상속권을 갖지 못하게 하는 민법 제1004조의2를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인, 이른바 ‘구하라법’이 8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생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재석 286명 중 찬성 284명, 기권 2명으로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피상속인에게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학대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같이 상속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법정상속인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2019년 유명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구 씨의 오빠가 “어린 시절 구 씨를 버리고 가출해 20년 넘게 연락이 두절된 친모가 뒤늦게 나타나 구 씨 상속재산의 절반을 받으려 한다”고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입법 청원이 10만 명 동의를 얻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지만, 20대, 21대 국회에서는 정쟁 등에 밀려 폐기됐다. 그 와중에 2021년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다 폭풍우로 실종된 고(故) 김 모 씨에 대한 3억 원 보상금에 대해 54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상속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들의 경우 상속권을 보장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상속권을 박탈하는 법률이 통과됐으니 이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관련 개정 법률에 대해 몇 가지 논의해보려 한다.
첫째,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부모가 자녀에 대한 상속권을 갖지 못하는가. 둘째, 구하라법의 악용 소지는 없는가. 특히 손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자녀가 먼저 사망할 때, 분쟁의 소지가 없는가. 셋째, 구하라법의 문제는 없는가. 예컨대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녀들은 상속을 받아도 되는가. 불륜 또는 상습 폭행을 한 배우자도 상대방 배우자가 사망할 때 상속을 받아도 되는가.
상속권 상실 위협 등 부작용 가능성도
우선 우리 민법의 상속 제도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우리 민법은 법률의 규정에 따라 상속인이 결정된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이 1순위이고, 직계비속이 없는 경우 직계존속이 2순위다. 1순위 또는 2순위가 있는 경우 배우자는 최선순위와 같은 순위를 갖되, 1순위 또는 2순위가 없는 경우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직계존속 및 배우자가 없는 경우 3순위인 형제자매가 상속인으로 상속을 받게 된다. 일단 상속인이 결정되면 상속인의 성별, 피상속인과의 친분 관계, 혼인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상속재산을 균분하는 ‘균분상속제도’를 따르되,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50%를 가산한다. 독자들도 여기까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민법은 이미 ‘상속결격’을 인정하고 있었다. 민법 제1004조는 “피상속인·직계존속·그 배우자 등에 대해 살인·살인미수·상해치사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사기 또는 강박을 통해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하거나, 유언(유언 철회 포함)을 방해하거나,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은닉하는 경우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바로 민법 제1004조의 상속결격사유가 한정적으로 열거돼 있다는 점에 한계가 있었다. 열거된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피상속인을 유기·방임·학대하더라도 상속에서 배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자녀에 대한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라도 피상속인인 자녀가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면 상속인이 되고, 상속을 받게 된다. 설사 자녀가 유언을 통해 자신을 양육하지 않은 부모가 상속을 받지 못하도록 유언 등을 하더라도, 해당 부모는 ‘유류분반환청구’를 통해 일정 부분 상속재산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개정된 민법은 이러한 기존 민법 제1004조를 보완하기 위해, 제1004조의2를 신설해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를 도입했다. 신설된 민법 제1004조의2는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이 ①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미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로 한정한다) ②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다만, 제1004조에 열거된 범죄의 경우에는 제1004조가 적용된다)를 하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③ 피상속인의 배우자나 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다만, 제1004조에 열거된 범죄의 경우에는 제1004조가 적용된다)를 하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를 상속권 상실 선고 사유로 열거했다.
피상속인은 그 직계존속에게 ①~③의 사유가 있으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그 직계존속에 대한 상속권 상실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이 경우 피상속인의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그 직계존속에 대한 상속권 상실을 청구해야 한다. 다만, 피상속인의 유언이 없는 경우라도 공동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에게 ①, ②의 사유가 있으면 가정법원에 그 직계존속에 대한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상속권 상실 청구가 제기되면 가정법원은 그 청구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을 고려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다.
이제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차례다. 첫째,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이 없는 경우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같은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하지만 앞서 본 민법 제1004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상속결격이 돼 상속인이 될 수 없고, 민법 제1004조의2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의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또는 다른 공동상속인의 상속권 상실 청구에 대해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 선고를 하면 상속인이 될 수 없다. 다만 민법 제1004조의2는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 ‘중대한 범죄행위’, ‘심히 부당한 대우’라는 불확정 개념의 상속권 상실 선고 사유를 정했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 판례 등을 통해 구체화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상속권 상실 선고 사유가 있었음을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증거가 있더라도 상속권 상실 선고를 할 만큼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앞으로는 손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재산이 많은 자녀가 먼저 사망하게 되면 상속재산 분할 과정에서 더더욱 분쟁의 소지가 많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예컨대, 자녀가 손자녀가 없이 사망한 경우 혼인 중이었다면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그 형제자매가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에 대해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할 수 있다. 일단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할 수 있는 배우자나 형제자매는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을 상대로 예컨대 ‘심히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등 상속권 상실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 하여금 상속재산 분할에서 대폭 양보하도록 압박하려 할 여지가 있다. 자칫 상속권이 상실될 우려를 고려해 직계존속이 상속재산 분할에서 대폭 양보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
헌재 판결로 유류분 주장 어려워져
셋째, 개정된 민법 제1004조의2는 상속인 중 오직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에 대해서만 상속권 상실을 정하고 있고, 다른 상속인들에 대한 상속권 상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잘못이 있는 배우자나 직계비속의 상속을 제한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기는 하다. 유언을 통해 상속을 제한할 경우 유류분권을 행사할 여지가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패륜, 유기, 학대 등을 한 상속인의 유류분 상실 사유를 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으므로, 유류분 상실 사유에 관해 다시금 민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유언이 없다면 패륜, 유기, 학대 등의 잘못이 있는 직계비속 또는 불륜 등의 유책배우자는 여전히 상속권을 유지하고 균분상속을 받게 되므로, 유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히 배우자의 불륜이나 폭행 등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경우라도 이혼소송 확정 전에 사망하게 되면, 이혼소송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어 여전히 불륜이나 폭행을 저지른 유책배우자도 ‘배우자’로서 상속인이 된다. 따라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혹시 이혼소송 확정 전에 사망할 것을 대비해, 유책배우자의 상속을 제안하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에도 불구하고, 상속권 상실 선고 사유의 증거를 수집하고 가정법원을 통해 상속권 상실 선고 사유를 받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상속권 상실이 선고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가급적 유언 등을 통해 재산 상속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강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