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 총대를 멘 한국거래소가 막판 '밸류업 영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대적으로 홍보한 '밸류업 지수' 발표 시기가 이달 말로 임박했는데도 공시한 회사가 단 12곳에 그치는 등 참여가 저조해서다. 이에 '밸류업 선배'들을 불러 실무진끼리 노하우를 묻고 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11일 상장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전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전체를 대상으로 메일을 보내 오는 27일 '밸류업 계획 공시 사례 설명회'를 연다고 안내했다.
행사는 앞서 올 들어 밸류업 공시를 낸 기업의 공시담당자가 나와 직접 사례를 설명하는 내용이 골자다. 신한지주와 콜마홀딩스 두 기업의 공시담당자가 발표자로 나선다.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 측은 "앞서 상장사 밸류업 준비현황 설문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았다"며 "기업들의 밸류업 공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실무자를 대상으로 계획 수립 과정과 절차, 실제 공시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회에 참석하는 공시 담당자는 해마다 필수로 채워야 하는 의무교육 1시간이 인정된다. 공시담당자 교육은 대부분 상장사 유관 단체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를 통해 공지되는데, 이례적으로 거래소가 직접 안내에 나선 것이다. 기업들의 현장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공시 담당자들은 해마다 4~8시간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국거래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이달 중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지난 5월 말부터 약 넉 달간 본 공시를 낸 기업은 12곳에 불과해서다. 밸류업 지수에는 상장사 100~150여 곳이 포함될 예정인데, 밸류업 공시 참여율이 극히 적은 상황에서 지수를 만들자니 면이 안 서는 것이다. 현재 지수를 출시한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밸류업 공시를 안 한 기업들로 지수를 꾸리게 되는 셈이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지수 발표 막판까지 밸류업 영업에 앞장서고 있다. 전날 이사회에선 주당 3000원(총 577억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이번 중간배당은 2005년 1월 한국거래소 설립 이후 처음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밸류업 프로그램 주관 주체인 만큼 주주환원의 모범을 보이겠단 취지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삼성전자·SK· LG·POSCO홀딩스·롯데지주·한화·GS·HD현대·신세계 등 10대 그룹 상장사 재무담당 임원들을 불러 모아 "밸류업 공시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시 담당자들 반응은 신통치 않다. 당근도 채찍도 뚜렷하지 않은 정책에 굳이 선구자로 나설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상장사 중 한 코스닥 상장사 IR 담당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시장에서도 자사 경영진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며 "강제성 없이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단타'용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계열사 소속 공시 담당자도 "(밸류업 참여 시) 공시와 동시에 정부와 주주들의 감시망이 붙는 격인 만큼 선제적으로 나서기 부담스럽다"면서 "암묵적인 대기업 내 참여 데드라인이 8월이었는데 막상 대부분 공시를 안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설명회 내용을 바탕으로 그룹 내부적으로 의견을 통일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