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은 우려를 넘어 현실이 됐다. 관련 업계는 이제 ‘어떻게 빠르게 극복해 내느냐’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한국 전기차 회사와 배터리 회사들은 제품·공정 혁신을 해내고 있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위기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9일 나왔다.
김윤창 삼성SDI 연구소장(부사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KIW) 2024’에서 “충남 천안에 국내 최초로 건식공정 파일럿 라인을 완공해 시험 생산을 시작했고, 이름은 ‘드라이EV(DryEV)라인’”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시장 판도를 바꿀 건식공정은 설비투자비를 최대 30% 줄이는 기술로, 공식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차전지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으로 이뤄진 활물질을 액체 상태(슬러리)로 만들어 금속 극판에 코팅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높은 열로 극판을 건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믹싱-코팅-건조-압연’ 총 네 단계에 걸친 ‘습식공정’이 필요하다. 반면 건식공정은 활물질을 고체 파우더로 처리해 코팅한다. ‘믹싱-필름화’ 두 단계로 공정이 줄어든다. 김 부사장은 “결국 캐즘을 극복하려면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며 “공정 설비 혁신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투자비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최경환 SK온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전고체 배터리’로 시장 침체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최 CTO는 “배터리 개발·생산 절차를 보면 안전을 위한 요소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며 “가열성 전해질을 고체화하는 방식 등을 통해 안전 관련 비용을 줄이면 전체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CTO는 “리튬메탈 배터리 연구개발에도 집중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면 시장 파급력과 효과가 클 것”이라고 했다.
현대자동차는 배터리 원소재 제조부터 재활용까지 망라하는 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해 캐즘을 극복해 나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창환 현대차 전동화에너지솔루션담당(전무)은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배터리 공급을 하고 있으며, 북미 지역에서도 JV를 통해 공급망을 안정화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삼원계(NCM) 배터리와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외에 보급형 NCM 배터리를 추가로 개발해 ‘중간 지대’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보급형 NCM은 기존 NCM과 비교해 값비싼 니켈 함량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망간 비율을 높인 배터리다. 김 전무는 “중국과 달리 LFP 공급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북미 시장에서 보급형 NCM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성능과 가격에 맞는 최고의 전기차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상훈/김진원/하지은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