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한 대에서는 매일 1.5GB(기가바이트)의 개인 데이터가 생성된다. 작년 말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가 49억 명이니 매일 73억GB의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국내 이용자가 대부분인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업체가 확보한 개인 데이터는 미국 빅테크인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현 메타)·애플)와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국내 정보기술(IT)업계가 “GAFA와의 플랫폼 경쟁은 물론 인공지능(AI) 경쟁도 이미 끝났다”고 자조하는 이유다.스마트폰 100만 배, 공장 데이터다행히 빅테크와의 격차를 좁힐 마지막 찬스는 남아있다. 빅테크들이 전통 제조업과의 경쟁에서 주전장을 공장에서 플랫폼으로 바꾼 것처럼 플랫폼 기업의 주무대인 데이터의 판을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
데이터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기대를 모으는 것이 기업 데이터다. 스마트폰에서 하루 1.5GB의 개인 데이터가 발생할 때 제조 공장 한곳에서는 매일 1PB(페타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PB는 1GB의 100만 배다.
2021년 말 현재 한국의 제조업 공장이 20만2146개이니 하루에 약 20만PB, 즉 2000억GB의 데이터가 생산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공장으로만 전 세계 스마트폰의 30배 가까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전체 데이터에서 개인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 나머지 90%는 기업 데이터로 추산된다. 기업 데이터만 거머쥐어도 GAFA가 독점한 데이터 시장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기업 데이터 플랫폼을 조성하는 경쟁에서 유럽연합(EU)과 일본에 뒤처져 있다. 초기 플랫폼 경쟁에서 GAFA에 완전히 밀린 EU와 일본은 필사적이다. EU는 ‘가이아X’, 일본은 ‘우라노스에코시스템’이라는 민관 합작 기업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기업 데이터 플랫폼 앞선 EU·日‘개인정보 제공 동의’만 받으면 데이터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개인 데이터와 달리 기업 데이터는 입수가 쉽지 않다. 기업들이 회사 가치의 원천인 데이터를 쉽사리 공유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EU와 일본은 불가피하게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데이터 공유 대상을 전 산업에서 자동차산업으로, 적용 분야는 전기차 배터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공개하는 ‘배터리 패스포트’로 좁혔다.
제공한 데이터의 소유권은 기업에 두고, 플랫폼은 공유받은 데이터를 활용해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만 전념하도록 했다.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 소유와 활용을 분리한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EU와 일본은 한쪽에서 인증한 배터리 패스포트를 서로 인정하는 상호인증제까지 추진하고 있다. EU 최대 회원국인 독일과 일본이 제조업, 특히 자동차산업 비중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합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들어서야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기업 데이터 플랫폼 구축 작업에 나섰다. 시간은 촉박하다. EU와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도 기업 데이터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플랫폼과 AI가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산업판 GAFA’를 탄생시키느냐에 달렸다”는 산업부 관계자의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