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E&S, 가스전·부유식 생산공장 동시 확보…"年수천억 이익낼 것"

입력 2024-09-09 17:36
수정 2024-09-10 08:31

지난 4일 싱가포르 서쪽 끝 주룽섬에 자리 잡은 시트리움 조선소. 축구장 3개 크기의 선박 위에는 2000명이 넘는 일꾼들이 저마다 용접봉을 들고 가스관 조립에 한창이었다. 내년 1분기 안에 이 배를 바다에 띄운다는 약속 때문이다.

가로 64m, 세로 360m에 달하는 초대형 선박의 별명은 ‘움직이는 가스 생산공장’. 해저에 있는 천연가스를 끌어올린 뒤 육지로 옮기는 일을 담당하는 부유식 천연가스 생산 및 하역설비선(FPSO)이다. 세계 최대 규모로 짓고 있는 이 배의 주인 중 하나는 한국 에너지 기업인 SK E&S다. 이 회사는 FPSO를 활용해 수심 260m에 달하는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매년 천연가스 350만t을 뽑아낼 계획이다. 민간 첫 LNG 생산선박·가스전 확보 SK E&S는 이 배를 활용해 내년 3분기 안에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할 예정이다. 2개월간의 시운전을 거치고 상업 운전에 들어간다. 이 배를 짓는 데만 2021년부터 2조원 이상 투입됐다. 워낙 깊은 바다에서 가스를 뽑아야 하다 보니 강한 수압과 파도를 견딜 수 있는 FPSO 외엔 다른 대안이 없었다.

SK E&S가 거금을 들여 해외 가스전 개발에 나선 건 공급 안정성 때문이다. 매년 국내에 직도입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물량 900만t 중 500만t을 SK E&S가 수입하지만, 민간 기업이 장기 계약을 맺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SK E&S는 국내 발전·집단에너지 사업에서 장기적, 안정적 LNG 수요를 확보했다. 이후 수요처에 맞는 물량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자체 개발 가스전과 중장기 계약 등을 적절히 혼합해 안정적인 사업을 운영해 왔다.

SK E&S는 그동안 인도네시아 탕구 가스전과 북미 셰일가스 매장지에서 LNG를 구입했다. 인도네시아와 맺은 계약은 2026년 끝난다.

SK E&S가 가스전을 직접 확보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2010년부터 가스전을 찾기 시작한 SK E&S에 바로사 가스전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2012년께였다. 미국 에너지업체 셸·코노코필립스가 매장을 확인한 만큼 ‘확실한 물건’이었다. SK E&S는 2014년 가스전 평가 비용을 대납하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후 호주 에너지업체 산토스, 일본 제라와 컨소시엄을 맺고 지금까지 총 43억달러를 쏟아부었다.

프로젝트 지분 37.5%를 확보한 SK E&S는 지분에 따라 전체 공사비 중 16억달러를 투입했다. 산토스(50%)에 이어 2대주주가 됐다. 바로사 가스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700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매년 채굴할 350만t 규모의 천연가스 중 SK E&S 몫인 130만t(37.5%)을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국내에 들여온 LNG는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원료로 쓰이거나 LNG발전소에 사용될 예정이다. 원가 경쟁력 확보SK E&S는 바로사 가스전 지분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원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1년 바로사 가스전에 인접한 다윈 LNG플랜트 지분 25%도 3억9000만달러에 사들였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나온 천연가스를 바로 옆에서 액체로 변환하고 탄소를 포집하기 위해서다. 인근에 확보한 또 다른 가스전인 바유운단 가스전에는 포집한 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맡겼다. 가스 생산부터 액화, 탄소 포집·저장, 열병합 발전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한손에 확보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SK E&S가 직접 가스전을 개발하고 LNG 플랜트를 운영하는 만큼 액화 비용과 플랜트 저장비 등이 절감될 것”이라며 “못해도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 증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만간 합병하는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SK E&S는 바로사 가스전에 매장된 콘덴세이트(나프타 원료)를 SK이노베이션에 공급할 예정이다.

싱가포르=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