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냄새를 전달하는 냄새 분자는 공기를 타고 사람의 코로 날아들어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단순한 감정을 넘어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냄새’처럼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이 될 때도 있다. 작지만 중요한 존재의 예시로는 미생물을 빼놓을 수 없다. 세균이 없으면 생태계는 무너진다. 인간의 몸도 그렇다. 공생하는 세균이 모두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최근 대규모 개인전을 개막한 한국계 미국인 아니카 이(53)는 이 같은 ‘작은 것들’에 주목하는 작가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1년 개인전을 통해 작가로 데뷔한 그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휴고보스상 수상(201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2019년), 테이트모던 터바인홀 전시(2021년) 등으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전시장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작업한 아니카의 대표작 33점을 만날 수 있다. 화학과 생물학, 기계공학 등 과학을 활용해 낯설지만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게 특징이다. 바다에 사는 단세포 생물인 방산충을 모티브로 한 ‘방산충 연작’이 단적인 예다. 방산충은 산소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작가는 광섬유 등 첨단 재료와 모터로 방산충이 숨을 쉬는 듯한 작품을 만들어 이를 표현했다.
‘공생적인 빵’은 효모를 사용해 장의 구조를 표현한 설치 작품, ‘절단’은 꽃을 기름에 튀긴 뒤 이를 부패시켜 시큼한 향을 풍기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인간과 미생물, 생물과 기계, 삶과 죽음 등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으며 모든 것이 거대한 순환의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표현했다.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이라는 전시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올해 신작인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는 아니카의 작품들을 학습한 AI가 만들어낸 영상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죽은 뒤에도 신작이 계속 나온다면, 작가는 죽은 걸까 살아 있는 걸까.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인가.” 전시는 12월 29일까지, 관람료는 1만2000원.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