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정신’의 상징 서울대 야구부의 통산 전적은 410전 2승 2무 406패다. 첫 승은 1977년 창단 후 27년 만인 2004년, 201번째 경기에서였다. 언론에 대서특필된 반면 희생양 송원대 야구부 감독은 이틀 동안 전화기를 끈 채 잠수를 타야 했다. 두 번째 승리는 올 4월, 첫 승 이후 20년 만에 따냈다.
서울대 야구부처럼 20년 만에 승리를 추가해 화제가 되고 있는 스포츠팀이 있다. 유럽 최소국인 교황령 산마리노공화국 축구 대표팀이다. 산마리노 대표팀은 얼마 전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 리그 조별 예선전에서 리히텐슈타인을 1-0으로 이겼다. 2004년 역시 리히텐슈타인을 상대로 A매치 첫 승을 거둔 뒤 승수 하나를 더 쌓는 데 20년이 걸렸다. 1986년 대표팀 출범 이후 통산 전적은 215전 2승 11무 202패.
산마리노는 국제축구연맹(FIFA) 210개 회원국 중 최하위 210위다. 인구 3만3000명에 축구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대부분 선수가 투잡을 뛰고 있다. 낮에는 그래픽디자이너, 학생, 식당 주인 등으로 일하다가 야간에 훈련한다. 주전 골키퍼가 경기 직전 부상을 당해 은행원인 후보 골키퍼가 근무 중에 달려온 적도 있다.
그래도 월드컵 예선과 유로컵 예선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개근 출전’하고 있다. FIFA 랭킹 198위로 산마리노와 같이 ‘승점 자판기’ 신세인 알프스 산중의 ‘우표의 나라’ 리히텐슈타인도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영국의 한 작가가 2002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이 나라 경기만 쫓아다니며 제목을 우표에 빗대 'Stamping Grounds'란 책을 냈을 정도다.
산마리노와 리히텐슈타인 축구팀, 서울대 야구부를 지켜주는 힘은 열정과 끈기, 자존감이다. 리히텐슈타인 축구팀 이야기를 쓴 영국 작가는 ‘국대’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자부심이 그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낸다고 했다. 산마리노 축구팀 감독의 말대로 축구 대표팀마저 없다면 사람들이 산마리노가 어디 있는지 알기나 하겠는가. 서울대 야구부원들에겐 야구는 그 자체가 종착지다. 포기할 줄 모르는 꼴찌들의 반란은 그래서 통쾌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