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선 음모론 제기하면 같은 편도 "근거 대라"…韓은 과학 검증도 딴지

입력 2024-09-08 18:35
수정 2024-09-09 01:11
한국이 유독 음모론에 취약한 이유는 진영 논리에 따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회적 분위기가 전문가의 목소리나 객관적·과학적 검증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일부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조차 진영으로 쪼개져 각자의 주장을 하다 보니 국민들이 사실을 사실로 믿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후쿠시마 처리수 괴담이 대표적이다. 원자력 전문가를 자처하는 한 국립대 명예교수가 친야(親野) 성향 유튜브 채널과 공중파 방송에 단골 출연하면서 오염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같은 과 교수는 한 언론 기고에서 “명예교수 한 분의 개인적 의견을 제외하면 학과 내에 후쿠시마 처리수의 안전성과 관련한 어떠한 의견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원자력계에서는 논쟁적 주제조차 되지 않는 방류수의 안전 문제를 정치세력과 일부 언론이 억지로 과학계의 논쟁적 주제로 몰고 가고 있다”고 통탄했다.

음모론이 발붙이지 않으려면 사회의 공론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정치인은 언론과 정당은 물론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했다. 2022년 프랑스 대선이 좋은 사례다. 당시 극좌 인민전선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글로벌 거대 기업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공모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적극 제기했지만, 프랑스 언론과 지식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그 같은 주장을 무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종종 언론이 음모론에 힘을 싣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6월 경북 성주에 설치된 사드 기지의 전자파가 미미하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 한 공영방송은 ‘1년 사이에 암 환자 10명, 사드 전자파 평가에 분통’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여전히 음모론을 믿는 일부 주민과 운동단체들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담았다. 2008년 광우병 괴담이 MBC PD수첩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PD수첩 제작팀은 핵심 인터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와 법정 다툼까지 벌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음모론에 대한 과학적 검증까지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세월호 외력 침몰설과 관련해 2018년 전문가들이 모인 선체조사위원회는 ‘근거 없음’으로 내부 결론을 내렸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제대로 발표하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다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조직했고, 동일한 결론이 나오기까지 3년6개월이 추가로 소요됐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