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독일 메쎄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의 주인공은 가전제품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세계 최고(最古) 가전 전시회의 얼굴이 바뀐 셈이다. TV와 냉장고 등 가전기기를 제어할 뿐 아니라 노인 및 아이 돌봄 기능을 겸비한 ‘가정용 로봇’이 가전업계의 새로운 ‘핫 아이템’이 됐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노부모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가정용 로봇을 나란히 선보였고 중국 테크노는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4족 보행 로봇을 전면에 내세웠다. 중국 가전업체 로보락은 4㎝ 높이의 방지턱도 넘을 수 있는 로봇청소기로 눈길을 끌었다. ○노부모 케어, 이젠 로봇이 담당
이날 행사장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품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정용 인공지능(AI) 로봇이었다. 동그란 공 모양의 삼성 ‘볼리’는 행사 시연자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키는 일을 똑똑하게 해냈다. 시연자가 “에이미에게 전화를 걸어줘”라고 하자, 스피커폰 모드로 에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베를린 관광지를 알려달라”는 주문에는 브란덴부르크문, 베를린 장벽, 박물관 섬 등 유명 관광지 사진을 바닥에 빔으로 쏴서 보여줬다. “더 자세하게 알려줘”란 지시가 떨어지자 화면을 바닥에서 벽으로 옮겼다. 큼지막한 화면은 자세한 관광 정보로 가득 찼다. 날씨를 묻자 “지금은 26도로 활동하기 좋지만, 오후 5~7시에는 비가 올 확률이 높으니 우산을 챙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LG전자의 ‘Q9’(프로젝트명)은 감정 표현에 능했다. 얼굴 역할을 하는 스크린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웃기도 하고, 윙크하기도 했다. “공감지능을 적용한 덕분”이라고 LG전자 관계자는 설명했다. Q9의 또 다른 특징은 ‘직립 보행’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직립 보행 덕분에 2㎝가 넘는 방지턱도 쉽게 넘는다”고 설명했다. <빨간 머리 앤> 책을 건네자 핵심 내용을 단번에 파악해 읽어줬다. 태블릿PC에 고양이와 달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단숨에 창작 스토리가 나왔다. ○잠재력 무한한 AI 비서 로봇
중국 업체들은 기동성을 끌어올린 첨단 로봇을 대거 선보였다. 중국 테크노의 4족 보행 애완 로봇 ‘다이내믹1’이 대표적이다. 계단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릴 수 있는 다이내믹1은 주인이 내린 명령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사람 같은 반려 로봇이다. 장착된 카메라로 노인과 아이를 돌보는 것은 물론 밤에는 경비원 역할도 한다.
로보락은 최첨단 이동 기술을 적용한 로봇청소기 ‘큐레보’ 시리즈를 처음 공개했다. 앞바퀴를 1㎝ 들어 올릴 수 있는 어댑티브 리프트 기술을 적용했다. 업계 최초다. 그 덕분에 4㎝ 높이의 방지턱도 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로보락 관계자는 “두툼한 카펫과 문턱도 오르내리며 청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앞으로 로봇이 각 가정의 ‘집사’ 역할을 해낼 것으로 예상한다. 가전제품 제어를 넘어 시니어 케어, 육아, 펫 돌보미 등으로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어서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가정용 로봇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0억달러에서 2032년 530억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삼성 볼리는 이르면 올해 출시된다. 삼성은 “볼리에 홀몸노인을 위한 기능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제안에 따라 노부모가 낙상 사고를 당하면 센서가 감지해 가족에게 알리는 기능을 넣었다. 식사량을 확인하는 기능도 적용했다. 내년에 Q9이 나오면 아이를 둔 부모의 육아 부담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을 것으로 LG전자는 기대하고 있다.
베를린=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