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사진)이 1심과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방위 압박을 받아온 SPC그룹이 관련 재판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당국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한창훈 김우진 마용주)는 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SPC 대표도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심리 결과 주식 가액의 평가 방법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봤다”며 “증여세 부과가 시행되기 전에 주식을 거래한 정황은 있지만, 앞서 판단한 바와 같이 주식평가 방법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이를 배임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허 회장 등이 2012년 12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적정가액(검찰 추산 1595원)보다 크게 낮은 255원에 삼립에 넘기는 과정에서 삼립은 179억7000만원의 이익을, 샤니와 파리크라상은 각각 58억1000만원, 121억6000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이에 허 회장 등을 2022년 12월 불구속 기소하고 허 회장에게 징역 5년, 조 전 사장과 황 대표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죄가 없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SPC그룹이 일반적인 비상장주식 거래와 마찬가지로 과거 3년간의 순손익을 기준으로 원칙적인 주식 가치 평가 방법을 채택한 것일 뿐”이라며 “평가 방법에 문제가 있거나 실무 담당자들이 회계법인의 평가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허 회장 등이 2012년 도입된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이 같은 행위를 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는 구조에 따라 부과되는 것이고, 주식 양도에서 양도가액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SPC그룹과 허 회장은 다른 재판에서도 대부분 승소를 거두고 있다. 허 회장은 ‘파리크라상’ 상표권을 아내에게 넘기고 사용료를 지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 6월에는 계열사 부당 지원을 이유로 공정위가 SPC그룹에 부과한 과징금 647억원을 전액 취소하라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