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세계 3대 르포문학의 하나인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내전 종전 한 해 전인 1938년 4월 25일 발행됐다. 작가 조지 오웰은 종군기자로서, 공화파 민병대로서 체험한 스페인내전을 이 책에 썼다. 스페인내전은 복잡한 성격과 혼란한 구성을 지닌 전쟁이었다. 만약 인류가 거기서 뭔가를 제대로 배웠다면 제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거기서 뭔가를 제대로 배운 오웰 같은 사람이 극소수라는 게 인류의 비극이었다.
이 비극은 표면적으로는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68년11개월26일 만에 망하기까지 지속됐고 내면적으로는 2024년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군부 세력과 싸우는 공화파 안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러 좌익 분파들이 뒤섞여 있었다. POUM(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 소속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 초반에서 회고하는 ‘혁명가들의 해방구’는 마치 공산주의적 이상이 ‘낭만적으로’ 실현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 환상은 소련의 꼭두각시인 스탈린주의자들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감금, 고문, 학살하면서 박살이 난다. 와중에 목에 총상을 입은 오웰은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로 탈출한다.
이게 전형적인 ‘공포소설의 플롯’이어서 씁쓸한 까닭은, 이렇게라도 진실을 깨닫고 마약 같은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럴 때 ‘뽀록난’ 이념 속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살인자와 위선자와 노예로 남게 되는데, 사실 이 세 부류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 몸이다. 영국으로 귀환한 오웰은 정치를 몰랐다고 고백하고, 이 고백은 모든 혁명은 타락한다는 고발로 업그레이드된다.
스페인내전의 승리자는 프랑코만이 아니었다. 뛰어난 정치꾼이자 타락한 혁명가 스탈린은 6·25전쟁으로 미국과 자유세계 동맹들을 한반도로 끌어들여 힘을 소진시키고 그사이 동유럽 등지를 장악했듯 스페인 공화파 내부의 온갖 반소주의(反蘇主義) 세력들을 척결해버렸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까지 800부 정도 팔렸고, 1950년 1월 21일 오웰이 사망한 뒤인 1951년 재판을 찍을 때까지도 초판 1500부가 전부 소진되지 못했더랬다. 이런 책을 작가 조지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 기를 쓰고 수정하며 재판을 내려 했다고 한다. 왜였을까? 자신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낭만주의’였다는 것을 자각하는 과정의 기록이어서가 아니었을까? “전쟁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의 모든 선전물,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러한 <카탈로니아 찬가>의 한 대목은 스페인내전에 대해 ‘낭만적’ 개소리들을 지껄이는 언론과 지식인들을 향한 환멸임과 동시에 1991년 12월 26일에까지도 소련을 찬양하고 심지어는 2024년 오늘에도 여전히 인간의 내부에서 기승을 부리는 가짜 혁명과 온갖 전체주의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좌익 파시즘을 고발한 오웰이었지만,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사회주의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사회주의는 양심적, ‘소년적(낭만적)’ 사회주의였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처럼 좌익 전체주의를 해체하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이론과 이치를 장착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거짓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작가 조지 오웰은 자신을 홀렸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의 감성 안에서 악의 씨앗 노릇을 할 ‘혁명가들의 해방구’ 같은 ‘낭만’을 극복했다. <카탈로니아 찬가>가 없었다면 <동물농장>과 <1984>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낭만스러운 것들’을 정의롭다고 믿고 허깨비를 실체로 여겨 밀어붙이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조종하는 스탈린 같은 악마가 너무 많다. 낭만이 팩트보다 득세하는 사회의 인간은 살인자 같은 위선자와 노예가 된다. 세계 3대 르포문학에서 <세계를 뒤흔든 열흘> <중국의 붉은 별>은 삭제돼야 한다. ‘낭만으로 포장된 거짓’이기 때문이다. 소련에는 <동물농장>이, 북한에는 <1984>가, 지금 남한에는 <카탈로니아 찬가>가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