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업계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대전환점을 맞이할 전망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전기차 의무화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전기차 지원을 축소해 온 유럽에서는 볼보가 전면적인 전동화 전략을 폐기하는 등 업계가 생존 전략을 새로 세우고 있다. 국내 완성차 회사들도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강화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볼보, 2030년 전동화 목표 폐기
볼보는 203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동화한다는 기존 목표를 폐기한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다. 대신 판매량의 90% 이상을 전기차 또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로 대체하기로 했다.
볼보는 글로벌 완성차 회사로선 가장 먼저 2021년 ‘전면 전동화’를 선언했다. 2025년까지 신차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고, 2030년부턴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었던 메르세데스벤츠 등 경쟁사보다 급진적인 목표였다.
그러던 볼보가 방침을 바꾼 건 안방인 유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빠르게 식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3% 증가한 71만2637대에 그쳤다.
볼보는 △일부 국가의 구매 보조금 철회 △전기차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 △전기차 인프라 구축 지연 등을 전동화 계획 폐기의 이유로 들었다. 볼보의 주요 판매 시장인 독일과 중국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최대 37.6% 높인다고 발표하자 볼보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EX30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생산단가가 높은 벨기에로 옮겨야 했다. ○포드·GM도 속도 조절민주당 대선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전기차 의무화에 관한 입장을 전환한 것도 전기차 캐즘을 더 연장할 요인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2035년까지 전기 또는 수소 자동차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의무화 공약을 내걸었다. 상원의원이었던 2019년엔 2040년까지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신규 승용차 100%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당시 미국 완성차 회사들은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2021년 GM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포드는 2040년을 그 시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둔화된 전기차 판매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은 지난 2분기 7.3%로 전년 동기와 같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7월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2025년 전기차 100만 대를 생산한다는 기존 계획에 대해 “수요에 달렸다”며 재검토를 선언했다. 포드는 지난달 전기 SUV 생산 계획을 취소하고, 전기차 생산기지로 전환하겠다던 캐나다 온타리오주 공장에서 내연기관 픽업트럭을 생산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판매 3위의 현대자동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회사들은 달라진 상황에 하이브리드카 라인업 강화 등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28일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를 열고 현재 7개 차종에 적용되는 하이브리드카를 14종으로 늘리고,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넣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연비를 더 강화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주행거리연장용전기차(EREV) 시장에 뛰어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국내 완성차 회사 관계자는 “최대 시장인 미국의 정책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큰 위기로 이어진다”며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압도하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폭스바겐이 독일 생산 공장 폐쇄를 발표하자 독일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일부 되살린다고 발표했다. 2028년까지 연평균 4억6500만유로(약 6886억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김인엽/김재후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