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생의 은퇴를 단순히 사회적 재앙으로 치부하는 것은 일차원적 시각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60년대생이 기존의 고령 세대와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차 베이비부머 은퇴연령 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평가’ 보고서를 쓴 이재호 한은 조사총괄팀 과장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시기에 성장한 2차 베이비부머는 이전 세대에 비해 근로 의지가 강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라며 “이들은 AI가 산업 전반에 침투하는 상황에서 IT 활용도가 높고 소득·자산여건이 양호하며 사회·문화 활동에 대한 수요도 크다”고 60년대생을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연령 진입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며 “정책적 지원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경제성장률 하락폭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재계 휩쓴 60년대생 슈퍼파워
실제 60년대생은 이전의 세대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첫째가 교육수준이다. 60~69년생의 2, 3년제와 4년제 대학졸업 비율은 33.8%로 50~59년생의 17.0%보다 배가량 높다.
아울러 1990년대 말 초고속 인터넷, 2010년대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IT기기 활용 능력과 빈도는 이전 세대는 물론 전 국민 평균 대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조사한 ‘2023 디지털정보격차’에 따르면 PC, 스마트기기에 대한 접근, 활용능력, 빈도를 조사한 결과 60년대생은 접근 수준과 활용 수준에서 각각 104.3, 100.4를 기록하며 전 국민 평균보다 우수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50년대생과 비교하면 활용 수준과 역량 수준은 20% 이상 차이가 난다.
이 같은 높은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60년대생의 전문일자리 종사자 비중은 이전 세대에 비해 크게 높은 편이다. 전문일자리란 관리직·전문직, 사무직, 기능·기계조작직을 포함한다. 이는 기술혁신 가속, 산업 구조 변화 등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에도 상대적으로 잘 적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AI 등 신기술이 장악한 2023년에도 50대의 전문일자리 종사자 비율은 전체의 60.6%에 달할 정도다.
이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부사장급 이상 임원 중 59.95%가 60년대생이었다. 올해 매출 기준 500대 기업 CEO의 평균연령은 59.6세였다는 점도 여전히 60년대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하는 수치다.
경제계의 거물급 인사들도 60년대생이 대세다. SK그룹 최태원 회장(60년생), CJ그룹 이재현 회장(60년생), KB금융지주 양종희 회장(61년생), 신한금융그룹 진옥동 회장(61년생), 농업협동조합중앙회 강호동 회장(63년생),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66년생),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67년생), 엔씨소프트 김택진 창업자(67년생),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68년생),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68년생) 등이다.
여의도 정치권 사정도 비슷하다. 1990년대 386이란 별칭으로 정치권에 속속 들어선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의 요직에는 586이 자리한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대부분 초선이었던 86세대는 제22대 국회에서 당선인 300명 중 과반을 훨씬 넘어섰다. 12석으로 4월 총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대표적인 86세대 정치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64년생이다. 5060이 된 지금도 60년대생은 여전히 정재계에서 파워를 가진 주류라는 얘기다. ‘부동산+금융’ 평균 자산 1위
당연히 자산도 많다. 자산보유 규모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50~59세가 6억452만원으로 1위다. 이어 60세 이상이 5억4836만원으로 2위다. 한국서 가장 부유한 세대란 얘기다.
60년대생은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기에 경제적 안정을 이루며 자산 축적을 경험한 세대다. 지금의 MZ세대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이들은 대졸자라면 웬만하면 기업을 ‘골라서’ 취직했다. 당시 대기업들은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같은 날 입사 시험을 봤을 정도다.
‘월화수목금금금’에 급여는 낮게 출발했지만 금리가 이들의 자산형성을 도왔다. 1980년대는 14%, 1990년대는 금리가 다소 떨어지지만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그래도 10% 선에 달했다. 4~5%면 고금리 평가를 받는 지금과 비교하면 ‘찐’ 고금리다.
또한 2000년대 초반의 IT 버블과 부동산 시장 호황 속에서 자산을 축적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을 보유한 비율도 이전 세대와 비교해 높은 편이다. 2023년 기준으로 50대 전체가구의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의 평균 자산은 4억5739만원으로 60대(4억4974만원)보다 많았다. 전체 세대 중 1위다. 평균 금융자산은 1억4713만원으로 60대(9862억원)보다 많았으며 40대(1억4746만원)보다는 근소하게 적었다. 전체 세대 중 2위다. “월평균 164만원” 마처세대의 어깨흔히 60년대생을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의 세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취업난에 시달리지 않았고 몇 번의 위기와 기회 속에서 부를 이룰 찬스를 얻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60년대생의 어깨에 올려진 짐은 무겁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주축으로서 오랫동안 경제와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사회적으로는 주요 산업과 직군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가정에서는 양극단의 세대를 부양하며 ‘마처세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처세대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60년대생이 샌드위치 세대가 된 건 그들의 부모 세대인 1930~40년대생이 노후 준비를 할 수 없었던 점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 자랐으며 복지 제도의 부재로 은퇴 후에도 경제적 자립이 사실상 불가했다.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1980~90년대생인 자녀 세대는 취업난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경제적 독립이 쉽지 않다. 따라서 60년대생은 부모를 부양하는 동시에 자녀의 경제적 자립과 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살아왔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8~15일 60년대생 980명을 대상으로 웹·모바일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대 10명 중 5~6명은 부모나 자녀, 혹은 양쪽 모두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의 6~7명 중 1명인 15%는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이중부양’을 하며 월평균 164만원을 지출했다. 소득절벽과 정년연장그나마 다행인 건 이들의 은퇴 전 실질소득이 같은 ‘낀세대’로 평가받는 이전 세대(50년대생)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988년 복지국가를 표방하며 전격 도입된 국민연금은 60년대생들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게 될 ‘복지 1세대’로 통했다. 도입 당시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소득 대비 내는 돈)은 3%, 소득 대체율(받는 돈)은 70%였다. 애당초 매달 소득의 3%를 넣으면 퇴직 전 3년 평균 월급의 70%를 주겠다는 비현실적 설계였다. 당연히 가입률도 높았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50대(1963~72년생)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87.2%다. 10년 전(2013년 12월) 기준의 50대(1953~62년생)보다 23.2%포인트 높다. 성실납부 비율도 높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67.4%의 납입기간이 의무납입기간(120개월)을 초과했다. 납입기간이 10년을 넘어야 연금을 탈 수 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노후 대비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국민연금 외에도 개인연금이나 저축성보험으로 노후 벽을 다졌다. 한국노동패널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50대(1962~71년생)의 실질 월별 개인저축액은 2011년 기준 50대(1952~61년생)에 비해 40.3% 더 많았다. 50만원에서 70만원으로 한 달 20만원 더 저축했단 뜻이다.
하지만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60년대생 중에는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경제적 대격변을 겪으며 고용불안과 경기침체로 인한 어려움을 직면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잘나가던 대기업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벤처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가 버블 붕괴로 도산한 사례도 많다. 이들에게 은퇴는 단순한 인생 2막이 아닌 불확실한 미래다.
기업들이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정년 연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시대를 겪은 일본에서는 정부가 나서 정년이 65세 미만인 기업은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거나 정년을 폐지하도록 했다. 그게 아니라면 퇴직 후 재고용을 의무화했다. 여기에 ‘연금겸업형 현역’도 만들었다. 수입 구조는 ‘연금+월급’으로 정부에서 연금을 받지만 일도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초고령사회 이끌 주역2025년 초고령사회가 올 때 860만 명의 60년대생은 54~64세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이들이 앞으로 초고령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이들의 선배 격으로 불리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7~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2024년 현재도 일본 내수시장을 움직이는 경제 주축으로 꼽힌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에 따르면 60년대생 9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퇴직자 중 54%가 재취업 또는 창업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균 2.3개의 일자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일하는 이유로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37%), “가계의 경제적 필요”(29%), “일하는 삶이 더 보람”(17%) 등을 꼽았다.
그러나 60년대생의 경제활동에 호의적인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다. 고령화와 복지 부담이라는 문제는 세대 간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특히 세대 간 경제적 불균형이나 청년층과의 일자리 경쟁이 사회적 갈등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연금과 복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이 인상될 것이란 우려, 부양의 의무 등도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A 씨는 “기득권을 타도했지만 기득권이 되어버린 세대”라며 “자기들이 누린 기회를 다음 세대에 주지 않음으로써 자기들이 타고 올라간 계층사다리를 무너뜨린 탐욕적인 세대”라고 평가절하했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일본은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가 고성장의 혜택은 누리면서 노후 부담은 젊은 세대에게 떠맡긴다고 해서 이들을 ‘도망치는 세대’라고 부른다”며 “60년대생이 일본처럼 세대 간 갈등으로 그 변동성을 키우는 세대가 아니라 초고령사회와 저성장사회를 극복하는 ‘길을 고르는 세대’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누가 어떻게 60년대생 은퇴를 축복으로 만들 것인가
한국 사회는 이들의 은퇴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과 정년연장 논의가 첫발을 뗀 단계다. 정부가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정책적 과제로 삼은 일본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동력의 재활용과 이에 따른 젊은이들의 일자리 감소 문제, 연공서열 폐지를 전제로 하지 않는 정년연장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반감 등 노동시장 자체의 문제도 풀기 쉽지 않다. 국민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장년층이 연금을 더 오랜 기간 내도록 하면서 정년연장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 집단적 반발에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의료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한계에 부딪쳐 있는데 60년대생들이 70대를 넘어서는 시점이 오면 병원 이용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 장례식장, 화장장도 이들의 수명이 다하는 때가 되면 턱없이 부족해진다.
하지만 현재 이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힘 있는 집단은 별로 없다.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 시민사회 등이 함께 지혜를 짜내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들의 은퇴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연금시스템, 의료시스템, 노동시장이 모두 흔들릴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성 있게 들린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