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체 살아나지 않는 미국 제조업에 대한 우려로 경기 침체 공포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 경제와 일찍이 기준금리 인하로 돌아선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부진한 성장 전망이 맞물려 경기 침체 우려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통상 9월은 미국 증시의 수익률이 다른 달에 비해 저조한 데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경기 침체 공포 등이 어우러져 당분간 변동성이 큰 장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기 침체 공포 과소 평가”
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3대 지수가 모두 큰 폭의 하락세로 마감했다. S&P500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12% 떨어진 5528.93을, 나스닥지수는 3.26% 급락한 17,136.30을 나타냈다. 러셀2000지수도 3.09% 하락한 2149.21에 장을 마쳤다. 고용 악화 등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한 지난달 5일 이후 한 달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지수(VIX)는 전 거래일 대비 33.25% 뛰며 20.72까지 치솟았다. CNBC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사라지면서 투자자가 미국의 소프트랜딩(연착륙) 여부에 집중하고 있다”며 “잇따라 공개된 제조업 관련 데이터가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날 미국 공급관리협회(ISM)는 올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를 공개했는데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8월 PMI는 47.2로 시장 예상치(47.5)를 넘지 못했다. 주요 경기 선행 지표 중 하나인 제조업 PMI는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을, 50보다 낮으면 위축을 말한다. ISM 제조업 PMI는 5개월 연속 50을 넘지 못하고 있다.
S&P글로벌이 공개한 올 8월 제조업 PMI 최종치도 다르지 않았다. 8월 47.9로 전월(49.6)은 물론 시장 예상치(48.0)도 밑돌았다. 크리스 윌리엄슨 S&P글로벌 수석분석가는 제조업 경기 둔화가 올 3분기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행 지표를 보면 이런 부담은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틀랜타연방은행은 이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예측 모델인 ‘GDP나우’를 통해 올해 3분기 GDP 증가율 예측치를 지난달보다 0.5%포인트 낮춘 2%로 제시했다. 미국의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3.0%였다. 아룬 사이 픽테트 자산관리사 수석전략가는 “오늘 시장은 우리가 경제 침체 공포를 너무 금세 잊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평가했다. ○엔 캐리 청산 불안도 커져미국 경기가 침체하면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주가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제조업 지표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문제는 미국 외에 중국과 유로존 상황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내수와 소비, 제조업 등 주요 3대 지표에서 잇따라 빨간 불이 켜졌다. 경제 개혁의 바탕이 된 부동산 경기가 크게 침체하면서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소비 지출은 여전히 취약하다.
미국에 앞서 6월부터 기준금리를 낮춘 유로존 상황도 좋지 않다. 유로존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올 2분기 GDP는 주요 산업이 위축되면서 전 분기 대비 0.1% 줄었다. 유로존의 8월 제조업 PMI는 45.8로 26개월 연속 5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추가적인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이뤄지면 ‘블랙먼데이’가 재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날 공개된 일본은행(BOJ)의 경제재정자문회의 제출 자료에 따르면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경제·물가 전망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클 윌슨 모건스탠리 전략가는 “Fed의 금리 인하폭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미국 경제가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으면 시장이 상승 탄력을 받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