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바리톤' 마지막 제자 아플 "獨 가곡의 정수 제대로 전할 것"

입력 2024-09-04 09:44
수정 2024-09-04 09:51

“피셔 디스카우(1925~2012)는 50년 넘게 매일 밤 작곡가의 의도, 작곡 배경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었고, 난 그를 보면서 음악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내가 준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가곡의 전설’로 불린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마지막 제자 벤야민 아플(바리톤·42)은 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제 삶에서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를 만난 건 최고의 행운이자 선물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플은 2009년 오스트리아 슈바르첸베르크에서 열린 슈베르티아데 마스터 클래스에서 피셔 디스카우와 처음 인연을 맺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까지 함께 했다. 그는 “피셔디스카우는 내게 영웅과도 같은 음악가였지만, 단순히 그를 모방하게 두지 않았다”며 “단순한 발성, 기교뿐만 아니라 무대 공포증, 작품 해석 방향 등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을 나에게 알려줬다”고 했다.


독일 출신의 바리톤 벤야민 아플이 처음 한국을 찾는다. 오는 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세예스24문화재단 주최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 사이먼 레퍼와 함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들려준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작가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연가곡으로, 젊은이의 실연과 방황을 24곡의 노래에 담고 있다.

아플은 “20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거대한 울림을 주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인간 내면의 감정을 세세하게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고,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들어볼 수 있기에 흥미롭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와 음악이 결합한 가곡은 독일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형태이자 독일 최고의 문화수출품”이라며 “그 진가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플은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성악가다. 20대 중반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도전한 음악가의 길이었지만, 사람들이 그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플은 2016년 소니 클래시컬과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차세대 바리톤으로 부상했고, 2022년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음반을 발표한 데 이어 이 작품을 주제로 만든 BBC 다큐멘터리 영화 ‘겨울 여행’에도 출연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어렸을 때 합창단에 다니면서 노래를 좋아한단 건 알아챌 수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성악가가 되어서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거쳐야 하는 삶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며 “그런데 대학 강의실에서 공부하던 중 문뜩 ‘나의 내면과 깊은 대화를 하고, 내 감정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겐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음악을 하겠다고 결정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제 선택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이번 공연은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첫 번째 음악 프로젝트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2014년 한세실업, 인터넷 서점 예스24 등을 자회사로 둔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그간 미술과 문학 부문에 중점을 두고 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올해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은 만큼 음악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다”며 “앞으로도 위대한 시인들의 문학 작품에 훌륭한 선율이 깃든 가곡 위주의 공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