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늦은 밤에 귀가하며 집이 보이는 골목에서 노상 방뇨를 했다. 대학 다닐 때다. 함박눈이 쏟아져 오줌 눈 자리는 바로 덮여 사라졌다. 술도 깬 듯 머릿속도 맑았다. 몇 발짝 떼서 집에 들어오는 동안 아무도 본 이는 없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 계단을 오르다 눈 내리는 골목길을 내려다 보고 서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나를 보자 아버지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아버지 방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내 행동을 아버지가 평소처럼 그 자리에서 나무라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해 아버지 방을 내내 지켜봤다.
불안해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새벽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오줌 눈 자리에 가 봤지만, 눈이 너무 쌓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아버지가 방으로 불렀다. “어젯밤에 대여섯 발자국만 더 걸어오면 되는 집을 놔두고 골목에다 왜 오줌을 누었느냐?”고 물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술에 취해서라고 변명하자 아버지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너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오줌 누기 전에 주변을 살피는 걸 내가 모두 지켜봤다. 마신 술은 집까지 오는 동안에 네 알코올 분해력이면 다 깼을 것이다”라며 내 행동을 “술을 핑계 삼은 객기(客氣)다”라고 단정 지었다. 객기는 ‘객쩍게 부리는 혈기(血氣)나 용기’라고 정의한 아버지는 “손님이 주인집 일에 참견하듯 별로 귀담아들을 말이 없을 때나 쓰는 실없고 싱거운 짓이다”라고 나무랐다.
“그런 행동은 오만(傲慢)함에서 나온다”라며 “잘난 체하며 남을 낮추어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옹졸하다”라고 지적했다. “술이 아니라 어둠이 너의 헛된 용기를 부추겼다”라고 해석하며 “객기로 한 행동은 후회가 따르고, 용기로 한 행동은 자부심을 키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누군가는 지켜본다. 성현들 말씀으로는 ‘사지(四知)’라고 했다. 둘만의 비밀이라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 남이 본다고 잘하고 안 본다고 멋대로 하는 건 치기어린 짓이다. 누가 지켜보기 때문에 바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방자하게 군 네 행동에 스스로 가책을 느껴 다른 일을 망칠까 염려되어서 하는 말이다.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해라”라고 일렀다.
마무리 지으며 그날도 아버지가 인용한 고사성어가 ‘신독(愼獨)’이다. 자기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말이다. 대학(大學) 6장에 나온다.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惡臭) 미워하는 것과 같이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하여야 하나니, 이것을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는 것[君子必愼其獨也]이다.” 아버지는 “소인은 한가로우면 악행을 저질러 못 하는 짓이 없다. 그러다가 군자를 대하면 겸연쩍어하며 자신의 악행을 숨기고 선행을 드러내려 애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마치 간과 폐를 들여다보듯 다 훤히 들여다보니, 그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어 “네가 오줌 누기 전에 주변을 살핀 것은 그런 행동이 옳지 않은 악행임을 이미 안다는 거고 다행히도 눈이 덮어주었지만, 그것을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모두를 속일 수 없으므로 혼자 있을 때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주자(朱子)가 말한 “소인은 스스로는 악행을 하면서도 남에게는 선하다는 평가를 바라는 사람이고, 군자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그대로 홀로 있을 때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라는 말을 새기라고 한 번 더 일러줬다. “나는 몸이 불편해 언제나 신독했다. 내 걸음걸이는 남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하며 살았다. 나 자신을 돕고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신독이 답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첫 시간 수업을 놓쳐 허둥대며 집을 나서는 나를 불러 세운 아버지가 마당에 지팡이로 써서 다시 일러준 말이다. “‘삼갈 신(愼)’자는 ‘마음 심(心)’ 자와 ‘참 진(眞)’ 자가 결합한 말이다. 진(眞)은 제사 지낼 때 쓰는 큰 ‘솥 정(鼎)’ 자와 ‘수저’를 뜻하는 ‘비수 비(匕)’ 자를 합친 글자다. 조심스럽게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말은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자경심(自警心)의 방법으로 신독 만한 게 없다. 신독에서 떳떳함이 나오기 때문이다.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주어야 할 참으로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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