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1주택자에 대해서도 수도권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주담대 최장 만기를 40년에서 30년으로 줄이고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를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했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도 주담대 최장기간을 50년에서 30년으로 줄이고 생활안정자금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요구에 당초 대출금리 인상으로 대응한 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라는 뜻이 아니었다’는 금융당국의 지침에 대출 문턱까지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출 규제가 너무 갑작스럽고 거칠게 이뤄지면서 선의의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도 아니고 1주택자까지 ‘투기꾼’ 취급해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틀어막는 건 과도하다. 자녀 취학이나 이직 등으로 이사하려는 사람들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만기 40~50년짜리 주담대를 아예 금지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만기 40~50년짜리 주담대가 없어지면 대출자가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늘어나 가계 부담이 커진다. 젊은 층의 ‘주거 사다리’를 끊을 수도 있다.
집값 상승과 가계빚 급증을 걱정해야 하는 정부의 상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금융권 대출에는 LTV(담보인정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란 ‘3중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9월부터 대출에 더 높은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가 시행됐다. 대출 한도가 더 줄어드는 것이다.
오히려 올해 들어 가계대출 급증을 주도한 건 디딤돌대출(매입), 버팀목대출(전세) 등 정부의 각종 정책 대출이었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시기를 7월에서 9월로 갑자기 미뤄 ‘대출 막차’ 수요를 부른 것도 정부다. 그래 놓고 가계대출이 늘자 은행들을 압박하니 은행들이 금융당국 눈치를 보느라 갑자기 예정에 없던 고강도 대출 규제를 쏟아내는 형국이다. 관치가 판치는 금융 후진국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