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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자본이득세 개편에 나서면서 금융투자업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고액 자산가는 세율 인상에 대비해 탈(脫)영국에 나섰고, 사모펀드업계는 성과 보수 세율 조정을 반대하며 “세율이 높아지면 ‘금융 중심지’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과 보수·세율 손보는 노동당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달 27일 연설에서 “더 넓은 어깨를 가진 사람이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며 세율을 높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노동당 정부가 펀드매니저의 성과 보수(캐리드 이자)에 대한 과세 제도를 변경할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스타머 총리 연설 이후 영국 사모펀드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영국 재무부는 최근 한 달여간 세금 제도 개편에 관한 업계 의견을 수집했다. 재무부는 의견 수렴에 앞서 “지난 정부가 남긴 220억파운드의 재정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지출, 복지, 세금 등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다”며 “성과 보수 과세를 개혁하고 세금 제도에서 공정성을 실현하는 동시에 영국 전역에 투자를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선 의견 청취가 ‘형식적 조치’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FT에 따르면 한 세무 변호사는 “정부의 업계 의견 청취는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난 8월 이뤄졌고, 이는 정부가 업계 상황을 형식적으로만 들여다본 것”이라며 “(세제 개편은) 정치적 결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英 매력 떨어져”사모펀드업계는 자본이득세 개편이 영국의 사모펀드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영국은 펀드 투자 성과 보수에 28% 세율을 부과한다. 성과 보수는 성격상 근로소득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영국 정부는 이를 자본이득으로 간주해 소득세 최고 세율인 45% 대신 28%의 자본이득세율을 적용해왔다.
업계에선 자본이득세가 최소 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본이득세율을 소득세율에 근접한 수준으로 조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영국 사모펀드산업이 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업계는 주장했다. 주요국이 고소득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세율을 높여버리면 글로벌 금융 허브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은 펀드매니저 성과 보수에 26~34% 세율을 적용한다. 한 사모펀드 변호사는 “노동당의 성과 보수 세금 인상 계획은 딜메이킹 센터 지위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은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사모 투자 허브다. 영국 사모펀드 및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영국에서 관리되는 펀드는 유럽 전체 사모펀드 및 벤처캐피털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KKR, 블랙스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등 미국 사모펀드 회사 지부가 대부분 영국에 있는데, 다국적 근로자들이 세금 제도 변경에 따라 다른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FT는 짚었다. 올해 초 투자은행 인베스텍이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약 30%는 세율 인상 시 영국을 떠날 것이라고 대답했고, 5%는 직업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답했다. 다만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의견도 42%에 달했다.
비거주자 면세 폐지안도 도마에 올랐다. 비거주자 면세란 사실상 영국에 살면서 법적 거주지를 외국에 둔 비거주자가 해외에서 얻은 소득을 영국으로 들여오지만 않으면 과세하지 않는 제도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외국인 사이에서 영국의 매력이 급감할 것이라고 업계는 우려한다. 세계 20대 사모펀드 회사의 한 파트너는 “정부가 10월 예산안 발표에서 정말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면 그 시기는 영국 탈출을 가속화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