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베스트셀러 <힐빌리의 노래>로 잘 알려진 39세의 오하이오주 출신 흙수저 JD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힐빌리’는 미국 중부 애팔래치아산맥 주변의 저소득 백인 계층을 낮춰 부르는 용어로, ‘산골뜨기’ 정도로 표현된다. 힐빌리 JD 밴스 후보의 지명은 미국 대선 핵심 경합 지역인 러스트벨트 공략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대통령이 아니라 선거인단에 투표하는 간접선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각 주(州)에서 한 표라도 많이 득표한 후보가 해당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고,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한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되는 방식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6년 제45대 대선에서 전국 득표율은 힐러리 후보에게 2.1% 뒤졌지만, 선거인단은 306명을 확보해 232명에 그친 힐러리 후보를 압도적 차이로 꺾었다. 주별 선거인단 수는 펜실베이니아 20명, 오하이오 18명, 미시간 16명, 위스콘신 10명으로 러스트벨트 저소득 백인 노동자의 전폭적인 지지가 당시 트럼프 승리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러스트벨트의 선택, 美 대선 향배는러스트벨트는 철강·석탄·방직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표적 공업지대였지만, 지금은 기계들이 녹슬어버린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의 쇠락한 공업지대로 전락했다. 과거 민주당 지지가 강했던 이 지역이 이제는 대선 때마다 그네처럼 지지를 바꾸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즉 경합주로 변모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러스트벨트의 선택이 대선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이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해 공들이고 있다.
힐빌리 출신 밴스를 내세운 공화당에 맞서 민주당도 미네소타 주지사인 팀 월즈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러스트벨트 인접 지역 출신이며 교사 및 군복무 경험이 있는 백인 중년 남성 월즈 주지사 또한 러스트벨트 지역 공략에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은 보호무역과 반이민 정책을 앞세운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 배경에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미국 제조업 쇠퇴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누구를 부통령으로 내세울까 하는 것은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핵심은 결국 어떻게 이 지역 제조업 경쟁력을 되살리고 일자리를 회복할지에 대한 정책에 달려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양당 모두 보호무역을 앞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강력한 반중국 정책과 함께 자신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외국산 철강에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민주당 또한 이에 뒤질세라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최대 세 배 인상 카드(최대 25%)를 제시하는 동시에 철강 및 자동차 노조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양당이 관세 인상을 앞다퉈 제시하고 있지만 관세 인상만으로 미국 철강산업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실제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관세 정책은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며 단기적인 대증(對症) 요법에 불과하다. 이미 언론에서는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할 경우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폭등할 것으로 분석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물가 문제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관세 인상 카드만으로 인건비는 높고 노동자의 숙련도가 낮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실제로 되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철강산업의 경쟁력 회복 열쇠는 ‘저탄소 전환’미국 제조업이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교우위를 활용해야 한다. 다른 산업은 몰라도 철강산업의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그 열쇠는 바로 저탄소다.
철강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전기를 사용해 철 스크랩(고철)을 녹인 뒤 제련하는 전기로 방식과 석탄(코크스)을 사용해 철광석(산화철)의 녹을 제거함(환원)과 동시에 용융하는 고로·전로 방식이다. 철강은 대표적 탄소 다배출 산업인데, 전기로에 사용하는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나 고로 방식에 사용하는 석탄이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저탄소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기로에 사용하는 전기를 재생전기로 대체하거나 자연산 철광석을 코크스가 아니라 그린 수소(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로 환원하고 이를 다시 전기로로 녹이는 방법(수소환원제철)을 사용해야 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전기로와 재생전기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은 약 18억5000만t이다. 이 중 절반이 훌쩍 넘는 10억t 이상을 중국이 생산했고, 다음이 인도(1억4000만t), 일본(8700만t), 미국(8100만t), 러시아(7600만t), 한국(6600만t) 순이다. 양적인 측면이나 단가 측면에서 미국이 중국 철강을 상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관점을 저탄소로 전환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저탄소 철강 생산에 핵심적인 전기로 비중(2021년 기준)은 미국이 약 70%로, 10% 수준인 중국은 물론 한국(32%)과 일본(25%)보다 크게 앞서 있다. 특히 가장 늦게 고로 중심으로 철강 생산 설비를 확장한 중국은 매몰비용이 높아 전기로 대체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미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지점이다.
RE100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재생에너지 측면에서도 미국은 기업이 전력구매계약(PPA)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에 가장 용이한 지역이다. 기업 구매는 어렵지만 국가 차원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는 중국은 몰라도 다른 경쟁국인 일본이나 한국보다는 비교우위가 확실하다.
저탄소 철강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단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다. 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지와 무관하게 미국이 가격 경쟁 중심의 철강산업을 저탄소 경쟁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할 정치적·경제적 동기는 차고 넘친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던 한국에 저탄소 경쟁으로의 프레임 전환은 새로운 위험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한동안 활발하던 저탄소 철강 논의가 줄어들고 있다. 철강은 모든 제조업의 기초 자재가 되는 중요한 소재다. 철강산업을 버릴 게 아니라면, 기후변화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 저탄소 전환과 이를 위한 지원을 가속화해야 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