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출점 제한과 영업시간 규제로 대형마트를 꽁꽁 묶어 놓은 10여 년간 식자재마트는 폭풍 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빅3’ 식자재마트의 매출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10년 만에 3.2배나 성장한 것이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 3사의 매출 증가율은 6.5%로 사실상 뒷걸음질 친 것과 다름없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이번엔 식자재마트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규제가 또 다른 풍선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사실 대형마트 규제로 반사이익을 본 것은 식자재마트만이 아니다. 식자재마트가 오프라인을 지배하는 강자가 됐다면 온라인에선 쿠팡 등 e커머스가 가파르게 성장했다. 영업시간 제한 규제에 손발이 묶인 대형마트는 새벽 배송 등에서 e커머스와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규제가 유통 업태 간 경쟁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최근 대형마트는 비상 경영을 고민할 정도로 실적이 바닥을 기고 있지만 e커머스 대표 주자인 쿠팡은 올해 2분기 매출이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규제가 보호하려던 소상공인은 보호하지 못하고 대형마트를 뛰지 못하게 주저앉히는 족쇄 역할만 한 셈이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 등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공청회 한 번 거치지 않고 2012년 도입된 대표적 졸속 입법이다. 대형마트가 주변 전통시장의 고객 유치에 도움이 되고 월 2회 의무 휴업일엔 주변 상권의 매출이 오히려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지만, 뽑아내기 어려운 ‘대못 규제’로 살아남았다. 공휴일이던 의무 휴업일의 평일 전환을 허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긴 하지만, 소비자 편익은 줄고 기대한 효과는 거의 없는 ‘나쁜 규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식자재마트를 이 규제에 포함해 대형마트처럼 주저앉히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 전통시장, 골목상권을 살리려면 보호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높일지 함께 궁리하는 게 낫다. 언제까지 바보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다닐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