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봇이 車 번쩍 들어 옮기고…방범봇이 통학길 24시간 순찰

입력 2024-09-01 18:15
수정 2024-09-02 00:54

지난달 30일 오전에 찾은 서울 성수동 오피스 빌딩 ‘팩토리얼 성수’. 지하 주차장에서 기자를 맞은 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모터 소리를 내며 다가온 널빤지 모양의 ‘발레파킹 로봇’ 두 대는 차 밑으로 쏙 들어가더니, 팔을 내밀어 앞뒤 바퀴를 꽉 붙잡았다. 그러곤 차를 들어올려 빈자리에 댔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단 3분.

이 주차장에는 조만간 ‘충전 로봇’도 들어간다. 발레파킹 로봇이 전기차 주차구역에 차를 대면 충전 로봇이 5㎏짜리 급속 충전기를 알아서 꽂아주는 시스템이다. 업계 관계자는 “운전자가 주차장 빈자리를 찾아 헤맨 뒤 차를 대고, 충전기를 꽂는 수고로움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이 만든 커피·햄버거·치킨로봇이 일상생활을 파고들고 있다. 인건비 상승과 로봇 구매가격 하락이 맞물린 결과다. 서울 성수동에서 출발한 ‘로봇 영토’는 시간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팩토리얼 성수에 ‘입주’한 로봇은 발레파킹 로봇뿐이 아니다.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카페 에어드롭커피의 일꾼은 로봇과 정보기술(IT) 시스템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하면 커피로봇이 제조하고, 배달로봇이 가져다준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만든 배달로봇 ‘달이딜리버리’는 빌딩 구석에 숨은 회의실도 척척 찾아 커피를 내온다. 빌딩에 있는 엘리베이터 및 출입문 시스템이 로봇과 연계돼 달이딜리버리가 다가오면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인근 누디트서울숲 빌딩에서도 LG전자와 카카오모빌리티가 만든 배달로봇 ‘브링’이 휘젓고 다니며 식음료와 우편을 배달한다.

이제 점심시간. 식당은 10분 거리에 있는 바스버거로 잡았다. ‘햄버거 패티를 굽는 로봇’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직원이 패티를 그릴 위에 올리면, 로봇업체 에니아이가 만든 ‘알파그릴’이 입력된 레시피대로 오차 없이 굽는다. 생산성도 높다. 한 시간에 200개 넘게 처리할 수 있으니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려도 걱정이 없다.

저녁 메뉴는 양념치킨. 두산로보틱스의 ‘튀김로봇’이 활약하는 롸버트치킨 성수점에 주문을 넣었다. 치킨업계에서 튀김로봇은 대세가 되고 있다. 장점이 많아서다. 일단 맛이 좋다. 레시피대로 튀기니 그때그때 맛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평가가 많다. 생산성도 높다. 한 시간에 최대 50마리를 튀긴다.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조리흄(고농도 미세먼지)과 빈번한 화상 사고 탓에 사람 구하기가 힘든 직종인데, 2년 치 연봉(대당 5000만원대)으로 ‘쉼 없이 일하는 직원’을 5년 이상 채용하는 셈이니 남는 장사로 볼 수 있다”며 “우아한형제들이 개발한 배달용 로봇 ‘딜리’가 상용화되면 배달도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은 귀갓길에도 동행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공원에선 로보티즈가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 ‘개미’가 쓰레기를 주웠다. 서울 암사동 강동롯데캐슬퍼스트 아파트 단지에선 HL만도가 만든 자율주행 순찰로봇 ‘골리’가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신호등을 카메라 센서로 인식해 횡단보도도 건널 수 있는 이 로봇은 서울 관악구의 다가구 밀집 지역에도 배치돼 실증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일상 속 로봇 더 많아질 것”서울 성수동은 ‘미래 로봇 세상’의 전진기지로 통한다. 로봇 기업과 관련 서비스업체들은 이곳에서 검증받은 제품과 서비스를 주변 지역으로 확산시킨다. 성수동에 “미래의 일상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곳”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로봇이 만든 커피와 치킨을 만나는 건 이제 성수동에선 흔한 일이 됐다.

업계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로봇과 함께하는 ‘성수동식 라이프 스타일’이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할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로봇으로 대체하는 비용은 점점 낮아지고 있어서다.

로봇의 ‘일상 침투’는 시간이 흐를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 산하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작년 10월 관광 가이드로 쓸 수 있는 로봇 개 ‘스폿’ 시제품을 공개했다. 관광객이 스폿에게 “주변 맛집 알려줘”, “이 주변 여행 동선을 짜줘”라고 요청하면 챗GPT 등을 통해 얻은 답을 들려주는 방식이다. 반려로봇, 간병로봇 등도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다.

오현우/김형규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