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사진)이 29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에서 “대선에서 승리하면 공화당 인사를 내각에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첫날부터 ‘중산층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후 사전 준비된 원고 없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산층 살리겠다” 약속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주 주지사와 함께 30분가량 인터뷰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즉각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중산층을 지원하는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를 실현하겠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자녀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생애 첫 주택 구입비용(2만5000달러) 지원, 바가지 물가 단속 등 경제 공약을 열거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포용성을 강조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섰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다른 시각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과 테이블에 앉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의 내각에 공화당원이 있는 게 미국 대중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후보 수락 발언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하는 정체성 논란은 일축했다. 인도계임을 주장하다가 갑자기 선거 기간이 돼서야 흑인 정체성을 주장한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언사에 대해 질문을 받자 해리스 부통령은 “오래되고 지루하며 늘 똑같은 옛 각본”이라면서 “다음 질문을 받겠다”고 넘겼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약속하며 “(휴전) 협상을 빨리 타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통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했다.
기후위기 문제에서는 달라진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수압파쇄법(프래킹)을 통한 셰일가스 추출 방식에 관해 과거에는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번 인터뷰에서는 “(당선되면)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지 중 한 곳이자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 프래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많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정책은 바뀌었을지언정) 내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며 “기후위기가 실존하는 심각한 위협이므로 이에 대응해왔다”고 말했다. 또 ‘그린뉴딜’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일부를 달성했기 때문이라며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지원 제도를 언급했다.
국경 문제에 대해서는 불법 이민자에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며 자신의 국경 범죄 대응 경력을 내세웠지만 ‘이민자 증가’라는 본질에 관한 응답은 하지 않았다.
동석한 월즈 주지사는 ‘전시 경험’에 관한 논란에 어물쩍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실전에 배치되지 않았으면서 전시에 무기를 다룬 것처럼 잘못 말했다는 논란에 대해 “24년간의 군 복무가 매우 자랑스러우며 (말실수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위험성을 언급하려던 것”이라고만 답변했다. ○‘한 방’은 부족
이번 인터뷰는 다음달 10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대면 TV 토론을 앞둔 해리스 부통령의 예행 연습 성격이 짙었다. 그간 그가 인터뷰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지 않으려는 데 우려가 컸던 것에 비하면 무난한 인터뷰라는 평가가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 부통령이 큰 실수 없이 인터뷰를 마쳤다”고 전했다.
그러나 핵심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 인터뷰와 관련해 “지도자답지 못했다”며 “지루했다”는 촌평을 내놨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 X에 “긴급: 해리스 인터뷰 입수”라면서 과거 한 미인대회 출전자가 지식이 부족해 말을 얼버무리는 영상을 게재하며 해리스 부통령을 조롱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