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전동 킥보드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사고로 이어질 것 같은데 불안하네요."
30일 서울 강남역 앞에서 만난 60대 김씨는 차도에 주차된 전동 킥보드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운전하거나 길을 걸을 때 아무 데나 놓인 전동 킥보드를 자주 본다"며 "자기가 편하겠다고 저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면 되겠나"라며 혀를 찼다.
서울 도심의 전동 킥보드의 불법 주정차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형 이동장치' 전용 주차구역 확대에 따른 강제 견인이 증가하고 있지만, 문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업체만 견인 비용을 떠안는 현재 구조를 개선해 이용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로에 떡 하니 킥보드가"…강남역 직접 가보니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시내 개인형 이동장치 전용 주차구역은 280개다. 이 중 191개는 서울시가, 나머지는 각 지자체가 민원 발생 지역을 판단해 설치 및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전용 주차구역은 지난 2021년 서울시가 '서울특별시 정차·주차위반 차량 견인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할 때 집중적으로 설치됐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차도 ▲지하철역 진출입로 ▲버스 정류소·택시 승차장 10m 이내 구역 ▲점자블록·교통약자 엘리베이터 진입로 ▲횡단보도 진입 구간 등 5곳엔 개인형 이동장치의 주정차가 금지된다. '전용 주차구역'은 이들 금지 구역 인근에 설치되어 있다.
특히 개인형 이동장치 불법 주정차 문제가 심각했던 강남구는 전용 주차구역을 기존 10곳에서 66곳으로 늘린다. 신설되는 56곳 중 50곳은 설치가 마무리된 상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이용자는 전용 주차 구역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강제 견인 등 조치가 따르는 주정차 금지구역에 대놓고 전동 킥보드를 주차하고 있다.
이날 오후 강남역 앞을 직접 둘러본 결과, 총 12개 출구 중 5곳에 전동 킥보드가 불법 주정차되어 있었다.
특히 1번 출구의 경우에는 이용자가 주차 후 바로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 듯, 기기가 입구 바로 앞에 떡 하니 놓여있었다.
이를 본 최용기(51) 씨는 "오늘 아침부터 저 자리에 주차된 상태"라며 "다른 사람이 통행에 불편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저렇게 주차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폐쇄회로(CC)TV에도 그대로 찍힐 텐데 참 뻔뻔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전용 주차 구역도 '불법 주차'로 인한 보행자들의 불편을 해소해주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강남역 8번 출구엔 두 곳의 전용 주차구역이 설치돼 있지만, 두 곳 중 한 곳은 사실상 빈 상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빈 주차구역엔 원래 이곳에 주차할 수 없는 일반 오토바이 1대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엔 전기 자전거 등 개인형 이동장치가 라인 밖에 어지럽게 주차돼 혼란스러웠다.
30대 직장인 김 씨는 "전동 킥보드를 가끔 타는데 솔직히 전용 주차구역을 굳이 찾아서 주차하지는 않는다"며 "아마 대부분 사용자도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않고 인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전동 킥보드는 차량과의 사고를 유발하는 위치에 세워져 있어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실제로 한 킥보드는 차도와 골목이 연결된 위치에 아무렇게나 주차돼, 우회전하는 차량과 충돌하기 좋은 지점에 놓여 있었다. 상황을 목격한 유진호(29) 씨는 "저녁엔 저렇게 도로에까지 나가 있는 전동 킥보드가 훨씬 더 늘어난다"며 "만약 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운전자는 무슨 죄냐"고 말했다. "업체만 일방적 책임…이용자 직접 제재 필요해"불법 주차구역에 주정차 된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한 견인은 매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가 지난해 불법 주정차로 견인한 개인형 이동장치는 총 6만2179건으로, 2021년 2만1173건에서 약 3배가량 늘었다.
결국 업체뿐만 아니라 이용자에 대한 직접 제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형 이동장치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단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견인에 드는 각종 비용은 일단 개인형 이동장치 업체에 청구되는 형태다. 현재 서울시 기준 견인료는 4만원이며, 보관료는 50만원 한도 내에서 30분당 700원이 부과된다. 업체는 일단 비용을 내고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객이 구상권 청구에 응하지 않아 비용을 보전받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개인형 이동장치 업체 '더스윙' 관계자는 "많은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출혈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며 "견인료를 청구받은 고객이 이를 무시하더라도 회사는 고객 확보를 위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달 지자체에 내는 견인 비용만 2억원인데 구상권 청구에 응하는 고객은 30%가 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미연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이용자에 대한 직접 제재가 가장 효과가 큰 만큼, 업체와 책임을 양분할 수 있도록 비용 청구를 이용자에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