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약시장에서 40대 이상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강남권 단지 위주로 ‘만점 통장’이 여러 개 나오는 등 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면서 가점이 높은 기성세대의 당첨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있어서다. 오는 11월부턴 빌라 등 중소형 비아파트 한 채를 보유해도 청약 때 무주택자로 간주한다. 고가점 경쟁자 유입으로 청약 시장에서 30대 이하 청년층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0대 비중 35%로 상승
2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청약 당첨자 총 1470명 중 30대 이하는 48%인 705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7월(45.4%) 후 30대 이하 비중이 가장 낮았다. 40대 당첨자 비율은 35.0%로 2022년 12월(39%) 후 2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작년 하반기 한 자릿수에 그친 50대 비중도 올해 6월부터 두 자릿수를 보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서울 아파트값 상승장이 펼쳐지고 있는 데다 분양가가 더 오르기 전에 청약을 넣자는 심리가 확산하는 게 40대의 청약행을 부채질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길고,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청약 가점이 높아진다. 고연령층이 유리한 구조다. 서울 평균 당첨 가점은 올해 4월 37.5점에서 5월 56.3점, 6월 66.2점, 7월 67.3점으로 매달 크게 뛰고 있다.
40대 이상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와 강남구 ‘래미안 레벤투스’ 등 강남권 선호 단지가 잇따라 나왔다. 래미안 원펜타스에선 만점(84점)짜리 통장이 세 개나 등장했고 래미안 레벤투스에서도 70점대의 고가점 통장이 여럿 나왔다. 게다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는 규제지역이어서 기타 서울지역에 비해 가점제 비율도 높다.
이달 공급된 서초구 ‘디에이치방배’를 비롯해 ‘아크로 리츠카운티’, 강남구 ‘청담르엘’ 등 하반기 분양을 계획 중인 강남 3구 아파트가 적지 않다. 중·장년층이 묵혀둔 청약통장을 꺼낼 유인이 커지면서 당분간 40대 이상 당첨자 비중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분양가 급등 속에 분양대금 마련에 애를 먹는 청년도 늘고 있다. ○“11월 이후 청약 경쟁률 더 치열해질 듯”일각에서는 “청년이 밀려나고 있다”는 식의 문제 제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생애최초 특별공급 대상에 1인 가구도 포함하고 신생아 특별공급 신설, 청년주택드림청약통장 출시 등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청약제도 개편을 여러 차례 시행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해진 규칙대로 착실하게 점수를 모은 40대 이상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년층을 위해 생긴 혜택으로는 일반공급 가점제에서 동점자가 발생하면 추첨이 아니라 장기 가입자 우선 방식으로 당첨자를 정하도록 한 게 사실상 유일하다.
정부가 ‘8·8 공급대책’을 통해 청약 과정에서 무주택으로 인정해 주는 범위를 대폭 확대한 조치의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존엔 전용면적 60㎡ 이하, 공시가 1억6000만원(지방은 1억원) 이하 비아파트 1주택 소유주만 무주택자로 취급했다. 11월부턴 전용 85㎡ 이하, 공시가 5억원(지방은 3억원) 이하로 변경된다. 빌라(다세대·연립)와 도시형생활주택 등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내놓은 대책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빌라 등 비아파트 1주택 소유주가 청약시장에 대거 유입돼 청약 과열이 한층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빌라 소유주는 청약 가점이 높은 고연령층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안 그래도 심각한 청약 점수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젊은 층은 당첨권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역세권 청년특화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