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본질, '놀이터가 있는 시장'으로 돌아간 이마트 죽전점[현장]

입력 2024-08-29 15:09
수정 2024-08-29 15:11
2019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당시 부회장은 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왜 이마트가 안되는지 살펴봤더니 3가지가 사라졌다. 매장은 너무 어두워졌고, 고객의 귀를 즐겁게 해주던 노래는 나오지 않으며, 판촉 직원들이 모습을 감췄다."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당시 정용진 부회장은 스타필드의 성공, 활발한 소통으로 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고객들을 '이커머스'가 아닌 '전통시장'에 뺏겼다고 했다. 2000년대 전통시장을 떠나 대형마트을 찾아왔던 이들이 다시 시장으로 돌아갔다는 설명이었다.

마트의 본질은 '놀이터가 있는 시장'이다. 4인가구가 한국의 대표적인 가구 유형이었을 때 마트는 전성기를 맞았다. 어른들은 장을 보고, 어린 자녀는 장난감을 구경하고, 시식을 했다. 고객의 시간을 확보한 게 성공요인이다.

하지만 이 전성기가 끝나고 대형마트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용진 회장이 문제점은 찾아냈지만 이를 극복한 대형마트는 아직 찾기 어렵다.

29일 리뉴얼을 끝내고 정식 오픈한 경기도 용인시의 이마트 죽전점을 찾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죽전점은 고객으로 북적거렸다.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이었다. 다시 마트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놀이터'이자 '시장'으로 만들었다. 죽전점은 유모차를 끌고온 엄마 아빠들을 도와주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 생기 되찾은 이마트5개월간의 리뉴얼을 끝내고 29일 새로 오픈한 이마트 죽전점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1층 '팝업존'이었다. 이른바 '파산핑'으로 불리는 '사랑의 하츄핑'을 보기 위해 찾은 아이들이 팝업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게임을 하면서 내는 웃음소리였다.

그간 이마트가 일부 상품을 팝업 형태로 선보인 적은 있으나 특정 브랜드와 협업하는 공간을 만든 것은 죽전점이 처음이다. 8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운영되는 '사랑의 하츄핑' 팝업 공간에서는 한정판 상품과 포토존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들이 모이자 점포의 분위기도 살아났다. 이마트가 원한 그림이기도 하다. 죽전점은 가족 단위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휴게 공간에 가장 공을 들였다.

1층 정중앙 부분 150평(495㎡)을 쉼터인 '북그라운드'로 만든 까닭이다. 이마트는 죽전점에 스타필드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의 축소판을 만들었다. 고객들이 쇼핑 중간에 쉴 수 있고, 아이들은 이곳에서 비치된 책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이 공간은 이마트 직원들이 기부한 책으로 완성됐다.

비슷한 공간은 2층에도 있다. 2층 키즈 패션브랜드 매장과 연결된 25평(약 82㎡) 규모의 '키즈그라운드'(휴게 공간)를 배치했다. 자녀를 동반한 3040 고객들이 쇼핑을 즐기면서도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휴식하고 놀이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옆에는 편안한 소파와 아기 침대, 기저귀 갈이대 등을 갖춘 약 21평(약 69㎡)규모의 유아휴게실도 마련해 유아 동반 고객 편의도 대폭 강화했다. 현장 설명을 담당한 박맑음 이마 F&B 팀자은 "가족 단위의 고객들을 위해 스타필드 급의 유아 휴게실을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 구경하는 재미까지이번 리뉴얼을 통해 이마트는 마트 공간을 대폭 축소했다. 기존에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 등 총 2개 층에 걸쳐 있던 3800평(1만2540㎡) 규모의 매장은 지하 1층 2300평(7590㎡) 규모로 줄였다.

여기에는 '알짜'만 남겼다. 마트의 본질에 집중한 결과다. 죽전점은 '신선식품' 위주로 매장을 구성했다. 33m에 달하는 축산 코너에서는 화식한우, 바비큐, 미식돼지 등 프리미엄 축산물부터 '후레쉬팩', '슈퍼 세이브팩' 같은 가성비 덩어리육까지 다채로운 상품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다. 신선한 상품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점포에서 직접 반죽해 만든 프리미엄 수제 식빵과 베이글 등을 선보이는 '블랑제리 전용존'도 만들었다.

죽전점은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매장은 밝고, 분위기는 즐겁고 매장 이곳 저곳에서는 판촉 직원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참치 전문 코너에는 참다랑어 해체 쇼를 선보이는 직원이 있었다. 고객들이 지나가자 열심히 참치 부위를 설명해주며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마트가 내세우는 '상시 저가 쇼핑'도 빠지지 않았다. 신선 매장 한복판에 ‘홀세일존(Wholesale zone)’을 만들어 대용량 초저가 상품을 정상가 대비 2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카테고리별 매대 곳곳에 고객들의 수요가 높은 각 분야 인기 상품들로 구성된 '슈퍼 프라이스존'을 마련했다.

젊은 부부 또는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도시락과 샌드위치 등 간편한 델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그랩앤고(Grab&Go)' 코너는 9m로 대폭 확대했다. 식사거리를 고민하며 방문한 고객들이 신속하고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위치는 매장 입구편으로 배치했다. ◆ '낀 점포'에 생명을 불어넣는 법오프라인 점포는 양극화되고 있다. 가족들이 날을 잡고 놀러가는 초대형 점포와 소형가구가 먹거리를 사기 위해 찾는 소형 점포. 초대형 점포는 스타필드와 같은 복합쇼핑몰이며, 소형 점포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또는 편의점이다.

이로 인해 '낀 점포'가 된 대형마트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복합쇼핑몰보다 체험 가능한 콘텐츠는 적고, 소형 점포와 비교하면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죽전점은 중요한 매장이다. 매장 면적 6000평(1만9800㎡) 에 달하는 대형 이마트 점포인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고, 매출도 이마트 점포 가운데 상위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특히, 5km 내외 동네 상권을 타깃으로 해 경기 동남부 오프라인 소비자를 흡수할 수 있는 지리적인 장점도 갖췄다.

이마트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이마트 죽전점을 5개월간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한 이유다. 이름도 바꿨다. '이마트 죽전점'에서 '스타필드 마켓 죽전점'으로 변경했다. 사실상 '미니 스타필드'인 셈이다.

특히, 젊은층을 사로 잡기 위해 '10대들의 3대 쇼핑공간'을 전부 죽전점에 집어넣었다. 1층 올리브영, 2층 다이소·아트박스가 바로 그것이다. 전연령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마트 한채양 대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유통 시장에서 마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고객의 시간을 점유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 구성이 필수"라면서 "스타필드 마켓은 이마트의 그로서리 강화 전략에 스타필드의 테넌트 운영 노하우를 결합시킨 최적의 쇼핑 공간이자 지역 주민들에게 여가와 쇼핑의 동시 체험을 제공하는 신개념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