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 임대주택 658만 가구 중 514만 가구(78%)는 비등록 임대 물건이다. 나머지 등록 임대 144만 가구도 개인이 갖고 있는 물량이 63%나 된다. 이 같은 임대시장의 영세화가 ‘전세살이’ 설움을 키우고 있다. 임차인(세입자)은 2~4년 후 이사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전세사기 불안감 등을 안고 산다. 하자 보수를 둘러싸고 집주인과 갈등을 빚는 일도 다반사다.
정부가 임차인의 이 같은 주거 불안을 줄여주기 위해 ‘임대시장의 전문화·대형화’ 카드를 꺼냈다.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 법인이 20년 이상 운영하는 장기 민간 임대주택을 2035년까지 10만 가구 이상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전체 임대주택의 60%가량을 전문기업이 운영하는 일본처럼 임대차시장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세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
국내에서 10년짜리 장기 민간 임대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는 과도한 임대료 규제 등으로 민간의 참여 유인이 적어서다. 예컨대 사업자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이상으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고, 의무 임대 기간에 세입자가 바뀌어도 임대료 상승 폭 제한(5%)을 받는다. 사업자 중에선 향후 분양 전환으로 분양수익을 얻기까지 임대수익 적자를 감수하는 곳이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가 28일 공개한 ‘신유형 장기 민간 임대주택’에는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율형과 준자율형, 지원형 등 세 가지 유형은 민간임대주택법상 규제가 추가로 완화되는 구조다. 예컨대 자율형은 임대보증 가입과 임대차계약 신고 의무 정도만 지키면 된다. 준자율형에선 세입자가 임대 기간에 계속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고, 임대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된다. 지원형은 초기 임대료 규제(시세 95% 이하)와 무주택자 우선 공급 등도 지켜야 한다.
지원형으로 갈수록 규제 강도가 세지는 대신 정부 지원도 늘어난다. 용적률 상향, 취득세·법인세 등 중과세 배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 등은 공통으로 제공된다. 준자율형과 지원형 사업자에게는 지방세 감면, 저리의 기금 융자 등도 제공된다. 지원형은 여기에 더해 기금 출자, 유휴 국공유지 수의계약 등도 기대할 수 있다. 사업자는 지역, 상황, 타깃층 등에 따라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이 관건정부는 다양한 시장참여자를 진입시키기 위한 방안도 내놨다. 보험사가 장기 임대주택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법령 해석을 명확화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보험사가 장기 임대주택 보유 때 지급여력비율을 25%에서 20%로 낮춰 리스크를 줄여주기로 했다. 사실 기업으로선 20년 동안 자금이 묶이는 것 자체가 작지 않은 부담이다. 초기에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포괄양수도를 허용해 20년간 임대주택을 유지하기만 하면 중간에 사업자가 바뀌어도 되도록 할 방침이다.
임대리츠 주식을 임차인에게 우선 배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세입자가 리츠 투자를 통해 거주 주택의 지분 일부를 소유해 배당받을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신유형 장기 민간 임대주택에 주택 유형과 평형 제한은 따로 없다. 보증금 수준은 조절할 수 있지만 월세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 고령자 등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정부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장기 임대인 ‘실버스테이’도 도입할 계획이다. 연내 시범 사업을 추진하는 게 목표다.
다만 임대료 규제 완화 등을 위해선 민간임대주택법이 개정돼야 한다. 국토부는 다음달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임대료가 지나치게 비싸게 책정돼 소비자 효용이 감소하고 사업자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소 월세가 높더라도) 목돈 마련 부담과 전세사기 우려를 덜면서 장기간 거주하는 것을 선택할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사안”이라며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