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완 LG전자 사장(CEO·사진)은 지난 27일 LG 가전 신화의 산실인 경남 창업사업장을 전격 방문했다. CEO 취임 1000일(8월 26일)을 맞아 찾은 첫 사업장이다. 이유가 있다. 창원사업장은 최근 냉난방공조, 스마트공장 등 인공지능(AI) 사업의 본거지로 탈바꿈 중이다. 전통의 가전 명가에서 AI 기반 플랫폼·기업 간 거래(B2B) 기업으로의 변신을 이끌고 있는 조 CEO의 전략을 최일선에서 수행하는 핵심 기지다. 조 CEO는 이날 약 2시간 동안 열린 임직원 소통 행사에서 빅테크와의 전략적 협업 등 AI 사업 전략을 공개하며 ‘AI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사업 구조 전환 속도
조주완호(號) 1000일간 LG전자의 가장 큰 변화로는 ‘사업 구조 전환’이 꼽힌다. 조 CEO는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용 가전, TV 중심 기업’이란 LG전자의 정체성에 플랫폼·B2B를 입히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소비시장 상황에 따라 매년 실적이 들쑥날쑥한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중심 제조기업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다.
조 CEO가 꺼낸 핵심 전략은 크게 네 가지다. 2022년 취임 첫해 조 CEO는 가전 사업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독’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제품을 팔고 끝이 아니라 최장 6년 동안 꾸준히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었다. 부가 서비스 매출도 기대할 수 있다. 올해 가전 구독 매출은 전년 대비 60% 급증해 1조8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사업 지역도 동남아시아, 북미로 확대하기로 했다.
‘웹OS’로 대표되는 플랫폼 사업 육성도 조 CEO의 작품이다. 매년 1억 대 넘게 팔리는 TV, 가전에서 나오는 콘텐츠 광고 수익은 올해 처음으로 1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100조원 수주 잔액을 쌓은 자동차 전장(전자장치), 칠러로 대표되는 냉난방공조 장비, 66년 제조 노하우가 집약된 스마트공장 등 ‘B2B’와 로봇, 전기차 충전 등 ‘신사업’은 LG전자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는 B2B 기업”성과도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LG전자의 B2B 매출 비중은 35%에 달했다. 조 CEO는 최근 열린 ‘인베스터 포럼 2024’에서 “LG전자를 B2C 기업으로 알고 있는 투자자가 많지만 B2B 기업으로도 손색이 없다”며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게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LG전자는 2030년 B2B, 플랫폼, 신사업 등에서 목표 매출 100조원의 절반 이상인 52조원을 달성하기로 했다.
B2B·플랫폼 사업 고도화를 위해 유망 기업 인수합병(M&A)과 조(兆) 단위 투자도 벼르고 있다. 웹OS와 TV광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7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협업 대상은 디즈니플러스, 파라마운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NBC유니버설 등이다. LG전자는 자동차 전장,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콘텐츠 등 미래 사업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을 체크하며 M&A도 준비 중이다. ○로봇 등 신사업 구체적 그림 그려야과제도 적지 않다. 소비자와 LG전자의 콘텐츠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개인용 휴대기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한 상황에서 LG전자가 플랫폼으로 내세우는 TV와 가전 시장의 성장성은 점점 둔화되고 있다. 휴대가 가능한 확장현실(XR) 기기가 대안으로 거론됐지만, 제품 출시를 잠정 연기했다.
상업용 로봇, 전기차 충전 등 LG전자가 매출 1조원 달성을 공언한 미래 사업에서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조 CEO가 지난 3년간 사업 구조 개선과 체질 변화의 씨앗을 뿌렸고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며 “기업 가치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신사업에서 실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