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경기 안산 단원구 성곡동의 반달섬 수변공원. 주말 오후에도 산책하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1층 상가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중개업소 벽면에는 매매·임대를 알리는 전단이 가득했다. 이 지역에는 7000여 실 규모(공사 중인 건물 포함)의 생활숙박시설(레지던스)이 있지만 대부분 공실이다.
한때 ‘아파트 대체재’로 불리며 불티나게 팔리던 레지던스 시장이 고사 직전에 처했다. 정부가 2021년 레지던스를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에 ‘불법 딱지’를 붙인 게 계기가 됐다. 전국 곳곳에서 주거 목적으로 분양받은 계약자가 시행사를 상대로 ‘사기 소송’을 제기하고, 잔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입주할 수도, 세입자 구할 수도 없어
2000년대 초 국내에 도입된 레지던스의 타깃은 ‘장기 투숙객’이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취사가 가능한 숙박시설로 레지던스가 등장했다. 레지던스가 주거용 투자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2018년 무렵이다. 정부가 아파트 규제를 강화하자 세금과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운 레지던스에 투자 수요가 몰렸다. 2017년 7000실을 밑돈 전국 레지던스 준공 물량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만 실을 웃돌았다.
2021년 9월 국토교통부가 건축법 시행령을 고쳐 용도변경이나 숙박시설 등록 없이 레지던스를 주거시설로 사용하면 이행강제금을 물리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 올해 말 유예 기간이 끝난다. 그동안 공급된 레지던스 물량 10만여 실이 공시가의 10%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매년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문제는 계약자에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대출이 제한된 만큼 중도금과 잔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직접 입주하거나 전세 세입자를 구할 수도 없다. 시행사와 건설사를 상대로 한 계약 해지 소송이 줄을 잇는 이유다. 한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18개 단지에서 관련 소송이 벌어지고 있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건설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경기 안산의 한 레지던스는 총사업비 1조5000억원 중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5500억원, 분양 수입(계약금+중도금)으로 9500억원을 조달하려 했다. 그러나 계약자가 분양대금을 치르지 않으면서 유동성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선 시행사 파산과 PF 대주단 부실로 사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오피스텔 용도 전환은 1%에 그쳐불법 시비에서 벗어나려면 오피스텔 등으로 용도를 바꿔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변경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도 폭과 주차장 변경 등은 준공을 눈앞에 둔 사업장이 바꾸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전체 레지던스 10만2853실 중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꾼 물건은 1175실(1.14%)에 불과하다.
특혜 시비를 우려한 지방자치단체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영향도 크다. 안산 반달섬의 한 레지던스분양자협의회 관계자는 “조례에서 규정한 주차 대수(4317대)에 못 미치는 3605대만 확보해 용도변경이 거절되고 있다”며 “가구당 주차 대수로 따지면 같은 지역 내 아파트보다 많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레지던스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를 넘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수원, 인천 송도 등 전국 곳곳에서 ‘유령 레지던스’가 나오며 도심 속 흉물이 될 것이란 얘기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레지던스 계약자는 사후 규제로 갑자기 피해자가 된 만큼 정부가 최소한의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