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최초로 증기기관이 등장한 때는 1766년이다. 군인 가문 출신의 발명가 이반 폴츠노프가 캐서린 대제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엔진을 완성했다. 1877년 엔지니어 표도르 블리노프는 세계 최초로 무한궤도 차를 만들었고 농업용에 자신의 발명품을 투입했다. 독일이 1886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차를 내놓은 지 10년이 지난 1896년에는 러시아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었다. 전기 엔지니어였던 히폴리테 로마노프는 1899년 자신이 제작한 러시아 최초의 전기차를 설계해 선보였는데, 차명은 뻐꾸기를 의미하는 쿠쿠(cuckoo)였다. 750㎏의 중량에 배터리 무게만 370㎏에 달했고 최고 속도는 60㎞/h로 비교적 빨랐다. 이를 토대로 로마노프는 러시아 정부에 전기차 활성화를 위한 자금을 요청했지만 경쟁사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자체 모터쇼를 개최할 정도로 러시아 자동차산업은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해외 수입이 월등히 많아 1915년 러시아 내 연간 자동차 생산은 1000대 정도에 불과했고 판매 점유율은 10%도 되지 않았다. 그러자 러시아 자동차산업의 홀로서기를 주도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차르 대제는 1916년 모두 6개의 자동차 공장 건설에 정부 자금을 할당했다. 하지만 이듬해 10월 혁명이 일어나며 자동차회사가 모두 국가로 귀속됐고 제조사는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산업 육성에 나선 스탈린도 군용 생산만을 독려했을 뿐이다.
향후 성장은 해외 합작이 기반이 됐다. 1929년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자 러시아는 미국 포드와 협력해 러시아 최초의 합작기업 가즈(GAZ)를 설립했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모스크바, 야로슬라블(Yaroslavl) 등의 공장에서 수천 대의 트럭, 승용차, 버스가 생산됐다. 1969년에는 승용 브랜드 바즈(VAZ)가 등장하며 자동차산업의 대형화가 추진됐다. 이후 1980년까지 소비에트연방은 연간 약 22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위기는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다시 찾아왔다. 경제 위기로 국내 생산이 주춤하자 해외에서 수입차가 잇따라 러시아에 도입되며 주요 소비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2005년 해외 자동차기업의 러시아 내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시장을 개방했고 한국차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완성차를 수출하던 현대자동차가 2010년 현지 공장을 설립했고 성장에 고무돼 2020년에는 GM이 매각한 공장까지 인수해 생산 여력을 추가했다. 이후 2001년에는 기아가 현지 기업과 손잡고 합작 조립공장을 설립해 승승장구했다. 2021년 8월에는 양사의 러시아 내 점유율이 27.5%를 기록해 러시아의 국민차로 군림하는 라다(LADA)를 제치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외 기업의 러시아 내 철수 압박이 강해졌다. 특히 자동차회사는 라다를 인수했던 르노를 시작으로 포드, 폭스바겐, 아우디, 벤츠에 이어 마지막에 현대차와 기아까지 결국 손을 들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시장이지만 전쟁의 여파를 피하기란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이들의 빈 자리는 중국이 빠르게 메워가는 중이다. 지난해 중국이 해외로 수출한 526만대 가운데 80만대가 러시아 영토로 향했고 체리그룹, 장성자동차, 장안자동차 등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러시아 소비자는 중국차의 저렴한 가격에 품질도 만족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현지 국민 브랜드인 라다마저 중국 기업에게 밀릴 정도다. 이외 30여개의 중국 브랜드가 러시아 자동차 시장을 휩쓰는데 판매되는 두 대 가운데 한 대가 중국산이다. 보다 못한 러시아
정부가 국영 자동차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선언했지만 전쟁에 신경쓰는 사이 밀려드는 중국차를 막아낼 겨를이 없다. 전쟁 탓에 오래 시간 쌓아왔던 러시아의 자동차가 중국에 무너지는 셈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