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북한 해외 파견자들은 ‘노스 코리아’라고 자신의 국적을 밝히는 것을 치욕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귀순한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사진)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북한 그리고 통일 포럼’에 발제자로 나와 이같이 말했다. 1972년생으로 평양 출신인 이 전 참사는 쿠바에서 두 차례 근무한 북한 외무성의 대표적인 남미통이었다. 탈북 전까지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탈북 이후 이 전 참사의 첫 공식 행보다.
이 전 참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북한의 ‘고립 외교’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북 성향의 국가들조차 북한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을 꺼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친북 국가들의 외교관을 만나 북한 당국의 조치(미사일 발사 시험 등)를 열심히 설명하지만, 상대는 듣는 시늉만 할 뿐 지지 표명 같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며 “결국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지지 발언’을 허위로 꾸며 당에 보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참사는 외교관으로서 주재국 국민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데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북한의 열악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외교관들이 착용하고 있던 김씨 일가의 배지를 빼 주머니에 넣기도 하고, 특히 남한과 비교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며 “엘리트들마저 나라를 부끄러워하는데,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 전 참사는 북한 내부 인권 유린 실태를 폭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에 북한을 인권으로 압박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구속력 있는 법적 제도가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매년 유엔총회 등에서 채택되는 대북제재 결의안은 김정은 입장에서도 큰 고민거리”라고 했다.
이 전 참사는 현 단계에서 김정은에게 반기를 드는 반체제 조직이 나타날 가능성을 ‘제로(0)’라고 진단했다. ‘공포 정치’와 ‘상호 통제 체계’를 갖춘 북한에서 생각을 공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외부 정보 유입도 중요하지만, 그에 더해 서로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SNS 같은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한다”며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진 내부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때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