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코스닥시장 ‘바이오 대장주’ 알테오젠의 지분 5% 이상 주주 명부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형인우 스마트앤그로스 대표가 주인공이다. 지분 5.04%(70만5518주·특수관계인 포함)를 취득했다고 공시한 것이다. 당시 종가를 기준으로 해당 지분의 가치는 1434억원 상당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경영쇄신위원장의 처남인 그는 삼성SDS, NHN 등을 거친 개발자 출신이다. 당시에도 거액 투자로 화제를 뿌렸는데 그의 지분 가치는 그 이후로 계속 불어났다. 알테오젠 주가가 급등하면서다. 4년이 지난 현재 그 가치는 1조원어치에 육박한다.
100억원 이상 슈퍼개미 26명
한국경제신문이 26일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에 의뢰해 5% 이상 지분(단순 투자 목적)을 보유한 개인들을 조사한 결과 주식자산이 100억원 이상인 이른바 ‘슈퍼개미’는 총 26명이었다. 이 중 보유 주식 가치가 가장 높은 ‘슈퍼 왕개미’는 형 대표였다. 알테오젠 등의 지분 가치가 9912억원에 달한다. 그를 비롯해 슈퍼개미 중에는 창업자, 개발자 출신이 많았다. 과거 슈퍼개미들이 주로 금융사 출신이거나 재야 고수인 점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코스닥시장 반도체·게임 등 중견 정보기술(IT) 종목을 선호한다는 점도 최근 슈퍼개미들의 특징이다.
조사에 따르면 단순 투자 목적으로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개인 투자자는 62명이다. 이들은 68개 종목에서 1조9291억원어치 주식을 보유 중이다.
가장 돋보이는 투자자는 형 대표다. 그가 보유한 알테오젠은 올해 주가 상승률이 241.53%에 달했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알테오젠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피하주사(SC)의 다음달 임상 3상 종료 등 기존 계획이 모두 순항 중”이라고 평가했다. 형 대표는 코스닥시장 ‘로봇 대장주’ 에브리봇 주식도 168만2640주 보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에 관심이 커지며 에브리봇 주가는 올해 들어 55.01% 올랐다. 지난달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무인 공정을 확대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주가가 하루 만에 10.73% 치솟았다.
서울에셋매니지먼트 설립자 출신인 김재학 전 대표도 ‘100억 슈퍼개미’ 명단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체외 진단기기 업체 바디텍메드 주식 335억원어치를 보유 중이다. 바디텍메드는 원숭이두창(엠폭스) 확산에 따른 영향으로 이달 6.84% 상승했다.
개인 사업가로 알려진 정호원 씨는 배터리팩 회사 이랜텍 주식 131억원어치를 갖고 있다. 이랜텍은 이날 11.22% 치솟는 등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전기차 화재 우려가 부쩍 커진 가운데 열폭주 현상을 막는 인증 체계를 갖췄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업가 출신 포진…테마주도 적극 투자
최근 주식재산 상위권 슈퍼개미에 기업가 출신이 포진한 점은 변화한 주식시장 세태를 반영한다. 과거 슈퍼개미는 직업이 다양했다. 10년 전 동일 조사에선 ‘주부 슈퍼개미’ 최경애 씨,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배진한 씨 등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태원물산, 보락 등에 투자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슈퍼개미 중 비슷한 분야 현직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베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주식자산 규모 2위와 3위를 차지한 최규옥 전 오스템임플란트 회장, 서용수 펄어비스 전 이사가 이런 사례다. 최 전 회장은 반도체 웨이퍼 증착장비 업체 주성엔지니어링과 통신장비·에너지저장장치(ESS) 기업 서진시스템 주식을 각각 477만4129주, 308만3493주 보유하고 있다. 주식 평가액은 2254억원에 달한다. 최 전 회장은 연초 오스템임플란트를 사모펀드에 매각한 뒤 투자자로 변신했다.
서 전 이사는 2022년 퇴임하면서 펄어비스 보유 지분 1439억원어치를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변경했다. 이후 주식 대부분을 보유 중이다. 올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내놓은 펄어비스는 지난 4월 저점(2만7000원) 대비 37.04% 올랐다.
소룩스 창업자인 김복덕 전 국민의힘 부천갑 예비후보, 이흥근 전 HB솔루션 대표도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 지분을 남겨둔 사례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창업가들이 자기 회사를 매각한 후 전업 투자자로 변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해당 산업 분야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관련 테마주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