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조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회사인 씨앤씨인터내셔널은 2018년 국내 브랜드를 통해 입술 제품인 립퐁듀를 선보였다. 야심 차게 내놓은 이 제품은 한 달 만에 매대에서 사라졌다. 출시 당시 여름이라 너무 잘 녹은 데다 소비자 입술에 닿으면 뭉개져 시장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좌절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배수아 대표는 북미 대륙에서 한 번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다. 실패 원인을 면밀히 분석한 뒤 다시 도전했다. 3년이 흐른 2021년 씨앤씨인터내셔널은 미국 인디 브랜드와 계약했고,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 제품은 현재 세계에서 1억 개 넘게 팔린 립스틱으로 자리매김했다.
배 대표는 지난 23일 “미국 소비자는 입술이 도톰해 보이는 화장품을 선호한다”며 “거기에 기존 액상형 제품과 달리 스틱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편하면서 위생에 더 신경 썼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제품이 인기를 얻자 유럽 대형 화장품회사에서도 문의가 왔고 그 회사의 내부 연구소와 경쟁해 수주했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세계가 열광하는 K뷰티를 선도하는 화장품 ODM사다. 자사 브랜드를 갖고 있진 않지만 로레알과 LVMH, 에스티로더 등 430여 개 브랜드에 직접 개발한 화장품을 공급한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겸하는 다른 회사와 달리 ODM 외길을 걷고 있다. 배 대표는 “선기획·선제안하는 것이 ODM의 가장 큰 매력이고, 제품을 만들 때마다 ‘내가 공장’이라는 생각보다는 ‘내 브랜드’라고 이입해 열정을 쏟아붓는다”고 강조했다.
씨앤씨인터내셔널은 배 대표의 부친 배은철 회장이 1997년 창업한 회사다.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수원공장 연구원 출신인 배 회장은 불혹의 나이에 눈 화장용 연필 형태의 아이라이너(젤 펜슬) 하나를 들고 회사를 차렸다.
2009년 입사한 배 대표는 지난달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회사는 배 대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젤 펜슬 하나로 힘겹게 사업을 이어갔다.
그는 “경쟁사가 너무 많아 일반적인 펜슬로는 영업이 잘되지 않았다”며 “다른 ODM업체가 안 하는 제품을 찾고 소비자 편의성을 고려해 제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 입술 화장품 시장에 도전했다”고 돌아봤다.
ODM 분야 후발주자인 만큼 차별화는 필수였다. 배 대표는 “선발주자들이 안전한 처방 위주로 제형 사용감이나 색감을 구현한다면 우리는 도전적이고, 생산 수량이 덜 나오더라도 원하는 색을 시도한다”며 “글로벌 브랜드에서 우리 발표를 보고 ‘와우’라는 반응이 나올 때까지 연구개발을 끊임없이 한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가 입사할 무렵 회사 매출은 연 10억원대에 불과했다. 그랬던 이 회사가 올해는 상반기에만 매출 1524억원, 영업이익 217억원을 거뒀다. 용인 공장 증설이 다음달 끝나면 생산 능력은 연간 4억 개(립스틱 기준) 수준으로 올라간다. 배 대표는 “현재는 사업 구조가 색조화장품 중 포인트 메이크업 중심”이라며 “나중에는 기초화장품 분야도 도전해 종합 ODM사로 키워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원=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