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두고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가와 성장, 외환시장과 가계부채 등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하는 가운데 정부의 금리 인하 요구는 거세지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딜레마에 빠진 한은이 10월에도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23일 한은의 8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금리 전망 리포트를 낸 19개 증권사의 금리 전망을 종합한 결과, 12곳(63.2%)이 다음 금통위인 10월에 금리를 내릴 것으로 봤다. 6곳(31.6%)은 11월 인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고, 1곳은 10월 인하를 전망하면서도 “지연 가능성이 높다”고 유보적인 의견을 냈다.
애초 시장에선 10월 금리 인하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이 9월에 금리를 내리는 것을 확인한 뒤 한국도 따라갈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8월 금통위 이후 이 같은 기대가 다소 꺾이는 모습이다. 한은이 지표 간 상충관계를 강조하면서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위해 확인하려는 지표는 크게 네 가지다. 물가와 성장, 외환시장과 가계부채다. 한은은 8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우려 때문에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의견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융 안정 측면에서 부동산 가격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위험 신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지금 막지 않으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10월 금리 인하가 어렵다고 본 증권사들은 한은의 이 같은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는 시점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며 “공급대책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정책 시차를 고려하면 11월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는 한은과 정부, 시장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금리 인하 여건에 진입했다고 본다. 2%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10월 인하 가능성을 높게 본 전문가들은 이 같은 통화정책 여건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동결은 금융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며 “이 총재가 물가 등을 들며 ‘금리를 인하할 시기’라고 언급한 만큼 다음 금통위에서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성장과 외환시장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린다. 정부는 내수 부진과 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 인하가 시급하다고 본다. 대통령실이 전날 금리 동결 후 이례적으로 “아쉽다”는 메시지를 낸 배경이다. 하지만 한은은 회복이 더디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하반기 경제가 다소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처음 공개한 분기별 전망에 따르면 3분기 성장률은 0.5%, 4분기는 0.6%(각각 전 분기 대비)였다. 연말로 갈수록 완만한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란 의미다.
외환시장도 불확실성이 크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후반에서 중반으로 내려오면서 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지만 이 총재는 “며칠 사이 환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