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청년 정치'가 성공하려면

입력 2024-08-23 17:36
수정 2024-08-24 00:17
얼마 전 막을 내린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마지막 메달을 안긴 선수는 갓 스무 살을 넘긴 역도 박혜정이었다. 이번 대회에선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계 정상급에 오른 MZ세대들이 단연 화두였는데, 그의 스토리도 꽤나 재미있다. 또래보다 체구가 좋던 소녀는 몇 년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영상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경기에서 장미란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번쩍 바벨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고작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동안 저 사람은 세계를 들어 올렸구나’라는 짧은 울림이 소녀를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키워냈다. 청년에겐 ‘꼰대’들의 잔소리보다 스스로 세운 롤모델이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일화다.

요즘 정치권의 큰 화두도 MZ다.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청년 정치’를 내걸고 있지만, 청년들은 되레 정치에 냉담해지고 있다. 점점 더 짧은 영상과 자극적 도파민을 추구하는 청년들에게, 호흡이 길고 지리멸렬한 ‘정치’란 행위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노잼’의 영역인 건 아닐까. 올해 초 지인이 한 예능 프로그램을 추천해줬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웨이브의 ‘사상 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쇼였는데, 정치적 지향이 다른 2030세대가 토론과 설득을 통해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정치 행위의 축소판인 이 프로그램은 입소문을 타 시청률이 초기보다 네 배 이상 뛰었고, 플랫폼 신규 가입자까지 대폭 이끌어냈다. 닉네임 ‘슈퍼맨’으로 출연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보수 험지인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돼 가장 주목받는 청년 정치인이 됐다. ‘최애’(최고로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정치도 청년들에게 예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쇼의 서사가 보여준다.


그런데 청년들은 왜 현실 정치에 무관심할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최애’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닭과 달걀의 문제 같은 것이겠지만, 정치에 흥미를 갖는 청년이 적으니 청년 정치인의 풀이 크지 않다. 기득권의 욕망과 구태로 빚어진 공천 과정을 통과하고 배지를 다는 건 그중에서도 극소수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56.3세, 이 중 2030 비중은 4.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8.8%)의 4분의 1에 그친다.

‘청년 정치’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부름받았지만, 그마저 상당수는 4년 뒤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선, 청년 비례 딱지로는 국회에서 크게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 낙마한 한 청년 정치인은 “양당은 젊은 당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청년을 소비할 뿐”이라며 “성장시켜줄 시스템이 없으니 스스로 잡초처럼 살아남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청년 정치인의 성공 모델이 많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국회에 출입하면서 갓 데뷔한 청년 정치인들이 주는 새로움을 종종 목격한다.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파리올림픽 사격 경기 생중계 현장을 무보수로 뛰었다. 협회의 갑질 등이 논란이 되자 개인 자격으로 후배들을 위해 ‘신고 센터’를 개설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준비를 위해 챗GPT를 유료 결제했다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이야기도 한땀 한땀 원고를 준비하던 의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북한에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조하던 탈북 공학도 출신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법안을 만든다. 개원날 줄을 서서 낸 당 1호 법안을 시작으로 70여 일간 이공계 지원·대북 관련 법안만 20여 개 쏟아냈다. 잘 가꾼 복근을 드러낸 프로필 사진을 명함에 넣거나, 캐주얼한 반팔 차림으로 ‘회장님’들을 만나는 톡톡 튀는 인물도 많다.

요즘 국민의힘은 고육지책으로 청년 당원 확대 실적을 공천 평가에 반영하는 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톱다운 방식으로 등을 떠밀기보다는 청년 정치인들이 고유의 빛깔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당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더 근본적인 해결 방안 아닐까. 다소 거칠더라도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참신한 모습이 또 다른 청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MZ는 ‘최애’가 생기는 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움직인다. 박혜정 선수가 20대의 장미란을 보고 바벨을 처음 잡았듯, 수많은 청년이 안면도 없는 또래 출연자를 보기 위해 유료 플랫폼을 기꺼이 결제하듯이. 정치권에도 청년들의 심장을 뛰게 할 만한 ‘최애’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