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사가 '신분을 밝히고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없었다'면서 의료 대란 사태를 지적한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을 향해 "이 나라 정치인들은 자신이 신분을 밝히면 특혜를 알아서 줘야 한다고 여길 정도로 썩은 것이냐"고 23일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응급 헬기 이용 사건을 겨냥해 "헬기 같은 특혜를 받지 못해서 섭섭했던 것이냐"고도 했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한 정치인이 겪은 응급실 뺑뺑이 사태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김 전 고문이 이번 일을 겪게 된 배경을 '세 개의 문제'로 나눠 설명했다.
양 과장은 먼저 김 전 고문이 '넘어져서 이마가 8cm 찢어졌는데 응급실에서 받아주질 않았다'고 토로한 것을 언급하면서 "이마 8cm가 찢어진 것은 환자 개인으로서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경험이지만, 의사에게는 전혀 응급이 아니다"라고 했다.
양 과장은 "흉터는 남겠지만, 아무 병원에서나 꿰매면 된다. 하지만, 이미 김종인은 자신을 응급이라고 여겼다"며 "이것이 첫 번째 문제다. 응급의 여부는 환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의사가 결정한다"고 했다.
양 과장은 이마가 8cm 찢어진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상황을 가정했다. 그는 "의사는 일단 지혈하면서 손상 정도를 파악하는 동시에 의식 상태 여부를 확인하고, 뇌출혈 감별을 위해 CT를 찍는다. 뇌출혈이 아니면, 찢어진 이마를 봉합하고 끝이 난다. 아무 병원에 응급실 의사가 꿰매면 된다"고 했다.
양 과장은 "결론적으로 김종인씨는 이 경우에 속했다. 만약 뇌출혈이었다면 진짜 응급이 된다. 뇌출혈은 출혈량이나 의식 정도에 따라 응급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정밀 관찰이 필요하다"며 "중환자실+당장 수술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필요한 것이었지만, 22곳의 병원에서는 중환자실+당장 수술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없었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라고 했다.
양 과장은 세 번째 문제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High risk, law return)'을 들었다. 그는 "아무 병원에서나 김종인씨를 받은 후, CT까지 진행하고 꿰맬 수 있지만, 뇌출혈이 나오면 전원이 매우 어렵다. 거기다 혹시나 상태가 나빠져 사망했다고 언론이 떠들면, 위험을 무릅쓰고 받아준 병원까지 각종 소송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끝으로 그는 실수를 했다. '내 신분을 밝히고 갔는데'라고 했다. 내 신분을 밝히고 가서 진료가 됐으면 이번 의료 문제에 입을 닫고 있었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야당 정치인처럼 헬기와 같은 특혜를 받지 못해 섭섭했던 것일까"라면서 "이 나라 정치인들은 자신이 신분을 밝히면 사람들이 특혜를 알아서 줘야 한다고 여길 정도로 썩은 것일까. 정녕 염치라는 없는 것일까"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 전 고문은 전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스튜디오에 오른쪽 이마에 밴드를 붙이고 나왔다. 진행자가 '왜 밴드를 붙였냐'고 묻자, 김 전 고문은 "넘어져서 이마가 깨졌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일으켜 응급실에 가려는데, 22군데를 전화해도 안 받아줬다"고 했다. 의료 대란으로 심각해진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직접 겪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병원에 갔는데도 진료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김 전 고은 "옛날에 자주 다니던 병원에 가서 내 신분을 밝히고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없다"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두환도 대통령 시절에 전문가 말을 들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의료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있냐"고 신속한 의료 대란 해결을 촉구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