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기밀 몇년씩 빼돌려도 집유…간첩법 강화해야"[정책마켓]

입력 2024-08-22 18:07
수정 2024-08-23 22:16


“수년간 안보 기밀을 빼돌려도 집행유예에 그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간첩 처벌 범위를 넓힐 때가 됐습니다.”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경북 영주·영양·봉화·사진)은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군사 기밀, 방산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육군 소장 출신인 임 의원은 국가안보실 2차장, 합동참모본부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그는 최근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한 자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군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군 형법은 적국을 ‘북한’으로만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군사 기밀을 유출하면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게 허점으로 지적돼 왔다. 최근 불거진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제도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전에도 군사 기밀 유출에 솜방망이 처벌만 이뤄진 사례가 많다는 게 임 의원 얘기다. 그는 “미국의 방산업체에 2·3급 비밀 여러 건을 누설한 예비역 공군 대장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에 그쳤다”며 “안보에 심대한 위해가 되는 행위를 제대로 처벌도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간첩을 방조한 사람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간첩법에 ‘외국’을 명시하고, 최대 사형까지 가능할 정도로 간첩죄를 무겁게 다스린다”며 “특히 중국은 외국인이 중국 군인의 사진을 찍는 행위까지 처벌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간첩죄가 성립되지 않아도 예비적 법률인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 규정을 적용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최근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선 임 의원 외에 주호영·윤상현·김선교·인요한 의원 등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고, 한동훈 당 대표도 힘을 싣고 있다.

임 의원은 “K-방산 역시 정보 유출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련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K-방산기술 보호 패키지법’도 최근 발의했다. 다음은 임 의원과의 1문 1답.

▶최근 낸 군 형법 개정안의 내용은

"외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하거나 군사 기밀을 누설하는 경우에도 간첩죄를 적용하자는 내용이다."

▶기존 군 형법 문제점은

"군 형법은 1962년에 제정됐는데 '적국을 위해 간첩 노릇을 한 자, 군사 기밀을 적에게 누설한 자 등을 간첩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하거나, 군사 기밀을 누설해 국가 안보에 치명적 위해 요인이 되는데도 처벌을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가 있나

"2006~7년도 예비역 공군 대장 A씨는 미국의 방산업체에 2~3급 비밀을 누설했다. 안보에 아심대한 위해 요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다 보니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에 그쳤다. 2008년도부터 6년간에 걸쳐 31건의 군사비밀을 누설한 예비 대위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끝났다."

▶다른 나라는 간첩 행위 어떻게 처벌하나?

"미국 독일 중국 같은 경우 적국의 개념에 외국을 명시하고 있다. 외국을 위한 간첩 활동에 대해서도 당연히 간첩죄를 적용한다. 미국 연방법 제18편 37장은 '외국을 위한 간첩 활동을 처벌한다'고 하고 있다. 외국을 위해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전달하거나 사용한 사람은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수미 테리 사건이 불거졌는데, 이런 케이스는 간첩죄로 처벌하지는 않는다. 다만 간첩죄 적용 증거가 불충분하면 예비적 법률인 FARA(외국인 대리인 등록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중국은 작년 7월 1일 반간첩법을 개정해 시행 중이다. 중국 국가 시설이나 중국 군인의 사진을 찍기만 해도 처벌 받을 수 있다. 여행객도 예상치 않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국정원이 주의를 요한 적 있을 정도다."

▶최근 K-방산기술 보호 패키지법도 발의했는데

"세 가지 내용을 담았다. 첫 번째는 방위산업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경우에 처벌을 강화하자는 부분이다. 현행법상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이를 1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20년 이하의 벌금을 병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방위사업청장이 방위산업 기술 보호에 관해서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하고, 국방부 장관이 구성하는 방위산업 기술 보호 위원회에 국토부, 해수부, 중기부 등 유관부처 국·실장급이 모두 참여하도록 했다."

▶K-방산 기술 유출도 심각한 수준인가

"지난해 1월 KAI 파견 연구원이 비인가 USB를 가지고 퇴근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다. USB안에는 6600건의 비밀 정보가 들어 있었다. 150만원을 받고 중국에 군사 기밀을 건넨 해군 병사들도 있었다. 국정원이 발표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18년부터 22년까지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 유출 건이 93건에 달하고,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정보도 포함됐다고 한다. 기업에 끼친 손해를 수치로 환산하면 25조원 수준이다."

▶젊은 층은 안보에 대한 의식 수준이 낮은 편인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보라는 것은 공기 같은 존재다. 없어지거나 오염되면 생존이 어려워지고, 잠시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을 겪는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우리 한반도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Freedom is not free'란 말이 있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안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북한 정권의 실상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글=정소람/사진=이솔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