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 '피벗 조건' 갖췄다면서…"부동산 정책 효과 보고 결정"

입력 2024-08-22 18:13
수정 2024-08-23 02:49

“물가만 봤을 때는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은이 고려하는 주요 지표인 물가에 대해 “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커졌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 안정을 언급할 때는 톤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증가의 위험 신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금융 안정 측면에서 지금 들어오는 시그널(신호)을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현재는 금리 동결이 좋다는 게 금통위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충하는 지표…금융 안정에 무게
이날 이 총재는 어느 지표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금리 인하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기준금리를 올리던 시기에는 모든 지표가 금리 인상을 가리켰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날 이 총재가 가장 무게를 둔 것은 금융 안정이었다. 그는 “한은의 통화정책 목표 중 하나가 금융 안정인데, 금융 안정의 중요한 요소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라며 “한은이 이자율을 급하게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은은 정부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의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DSR 강화 가능성이 커졌고, 금융위원장도 대책이 부족하면 추가로 대응하겠다고 했다”며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빚을 내 주택을 사는 ‘영끌족’에게는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 총재는 “이번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이 현실적이고 과감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금리가 예전처럼 연 0.5%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부동산 문제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자원 배분 측면에서도 한은이 부동산 가격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하는 고리를 끊어줄 때가 됐다고 금통위원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30원대로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 외환시장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이 총재는 “환율시장은 해외 요인에 의해 변화할 수 있기에 경계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4%도 ‘경기 부진’ 아니다내수와 경기에 대해선 ‘회복이 더디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부진하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날 한은은 지난 5월 2.5%로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하향 조정했다.

이 총재는 “성장률 전망치가 0.1%포인트 낮아졌지만 앞서 상향 조정이 과도한 면이 있어서 기술적으로 낮춘 것에 불과하다”며 “2.4%도 잠재성장률 이상이기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는 표현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다소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으로 평가됐다. 이 총재는 10월 금리 인하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10월에는 여러 경제 지표를 보고 판단해 결정할 것”이라며 “11월에 할 수도 있고 어느 방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시장은 큰 폭으로 출렁였다. 원·달러 환율은 3원 내린 1333원60전으로 시작해 하락세를 보이다가 기준금리 동결 발표 시점부터 빠른 속도로 반등해 1339원까지 올랐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긴축을 충분히 유지한다’가 ‘긴축을 유지한다’와 같은 표현으로 바뀐 부분 등이 다소 완화적으로 받아들여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후 소수의견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환율은 다시 하락해 1원90전 내린 1334원70전(오후 3시30분 기준)을 기록했다. 국채시장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