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OVE 클래식?…유럽으로 떠나볼까

입력 2024-08-22 18:41
수정 2024-08-23 02:52

라인강과 보덴호가 만나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드넓은 호수엔 1946년부터 매년 여름에 화려한 수상 무대가 펼쳐진다. 7월 17일부터 한 달간 계속된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오페라 마니아들에겐 꿈의 무대다. 5000여 석의 좌석에 300개의 스피커로 둘러싸인 올해의 무대는 눈 덮인 겨울 언덕. 강철과 수백 개의 목재로 한겨울 풍경을 호수 위에 그려냈다. 이 무대는 독일 영화감독 필립 스톨츨이 예술감독을 맡아 클래식 오페라의 새로운 차원을 선보였다. 2021년 ‘리골레토’에 이어 올해는 ‘마탄의 사수(Der Freischtz)’를 기획했는데, 연인 아가테를 얻기 위해 어둠의 세력과 계약을 맺은 맥스의 이야기가 강렬한 무대와 함께 펼쳐졌다. 칼-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연주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이외에도 80여 개 행사가 한 달간 열리면서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은 약 27만 명, 역대 최고 기록에 가까웠다.

나무가 한없이 울창해지는 한여름, 유럽의 클래식과 오페라 축제는 살면서 꼭 한 번쯤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힌다. 전통적인 오페라와 클래식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2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로마 원형극장에서도, 호수 위 비현실적인 수상 무대에서도, 잘츠부르크 골목길에서도 온통 꿈만 같은 선율이 흘러나온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름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다. 해발 400m의 고지대가 선사하는 청명하고 시원한 공기가 음악과 변주하는 이곳에선 7월과 8월 사이 200여 회의 공연이 도시 전체에서 열린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지만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쓰이던 장소의 암벽을 깎아 만든 1500석 규모 개방형 극장 펠젠라이트슐레가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한다.

올여름 유럽의 클래식 음악 축제 현장에 다녀온 아르떼 필진과 평론가들의 생생한 리뷰를 담았다. 93세의 지휘 거장 블롬슈테트와 빈필의 황금 사운드가 유난히 돋보였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40년 역사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베를린 필하모닉이 1984년 이후 매해 시즌을 마무리하는 야외 원형극장 ‘발트뷔네 콘서트’까지. 2만 명의 관객이 숲속 객석에서 다 같이 휘파람을 불었던 뜨거운 한여름의 현장 이야기를 전한다.93세 지휘자의 거침없는 손짓…'찬미의 노래'로 답한 빈필
클래식 거장 총집합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부축 받고 입장한 블롬슈테트
브람스·멘델스존 교향곡 지휘

세계 최고의 악단 빈필하모닉
바흐·쇼팽·슈만·모차르트 등
매일 새로운 음악으로 관객 찾아

지난 7월 19일 개막해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의 2024년 라인업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특별했다. 가장 먼저 7월 30일 오후 9시 그로서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열린 블롬슈테트와 빈필하모닉의 연주회가 단연 돋보였다.

93세의 초고령 지휘자는 부축을 받으며 입장해 앉아서 지휘하는 상황이었지만 음악이 시작되니 템포나 디테일에서 노거장 특유의 늘어짐이 일절 없었고, 예전의 그 꼿꼿한 기백과 집중력은 건재했다. 브람스의 ‘운명의 노래’와 멘델스존 교향곡 2번 ‘찬미의 노래’를 쉬지 않고 연주했다. 빈필이 낼 수 있는 가장 청명한 사운드와 그들이 연주한 최고의 멘델스존을 경험했다는 뿌듯함과 나이를 잊고 오롯이 음악에 헌신한 블롬슈테트의 치열한 예술혼을 향한 존경심이 동시에 부풀어 오른 특별한 연주회였다.

빈필이 연주한 최고의 멘델스존

같은 홀 7월 31일 오후 7시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빈필이 R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를 연주했다. 실내극 오페라의 새로운 탄생이자 전통적인 오페라의 마지막 불꽃으로 평가받는 이 오페라는 무대 없이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진행됐다. 간결해진 가수들의 연기와 노래, 오케스트라의 디테일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훨씬 강렬한 자극을 안겨줬다. 틸레만은 이전 빈 슈타츠오퍼의 ‘그림자 없는 여인’에서 작곡가의 맥시멈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이번 ‘카프리치오’에서는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모차르트의 집에서 8월 1일 오후 6시30분 연주된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느낀 무대였다. 유럽연합(EU) 회의장을 배경으로 이탈리아 총리(티토)의 자리를 뺏으려는 비텔리아의 음모를 이야기로 풀어낸 로버트 카슨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모나코 왕실 음악가들을 이끌고 너무나 극명한 선율과 하모니의 환상적인 너울을 만들어낸 카푸아노의 지휘 또한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새롭게 가질 정도의 감동을 안겨줬다.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세스토는 바셋 클라리넷 오블리가토와 함께 강력한 표현력과 강렬한 호소력으로 최고의 장면을 선사했고, 다니엘 베흘의 청명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티토왕 역 또한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오케스트라와 가수, 지휘자와 합창단 모두 완벽한 모차르트 오페라였다.

완벽한 모차르트 오페라

8월 2일 오후 6시 펠젠라이트슐레에서 열린 바인베르크의 ‘백치’ 또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은 회심의 역작! 거장 크시슈토프 바르리코프스키의 연출과 그라지니테-틸라의 지휘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 무대였다. 주위 사람들까지 짊어져야 하는 선택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예수가 아니기 때문에 파멸할 수밖에 없는 바보인 미쉬킨을 연기한 보고단 볼코프의 연기와 가창은 완벽 그 자체였다.

8월 3일 오전 11시 모차르테움 그로서 잘에서 열린 아이버 볼튼이 이끄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마티네 콘서트는 빈필 사운드의 원형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정격적인 모차르트 시대 음향을 만끽할 수 있었던 회심의 연주회였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오후 7시에 열린 빈필 단원들의 쇤베르크 편곡, 말러 대지의 노래 ‘작별 인사’ 악장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제 왈츠’ 연주회도 풀 오케스트라 이상의 매력을 전달한 흥미로운 실내악 공연이었다.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한 연주회로 8월 5일 오후 8시 그로서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열린 그리고리 소콜로프 리사이틀 또한 바흐에서 쇼팽, 슈만에 이르는 장대한 서사의 장이었다.

청중은 그의 엄청난 중압감에 옴짝달싹 못하다가 마지막 ‘숲속의 정경’이 끝난 뒤 비로소 긴장의 끈을 놓으며 일말의 열반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100년전 길거리 버스킹 무대, 거장들 줄 선 '음악 축제' 됐다 ‘살면서 꼭 한번 잘츠부르크’라고 할 만큼 이 축제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다. 매년 7월 중순부터 5~6주 동안 펼쳐지는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 연기자들이 모여 연극,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공연을 펼치는 ‘종합 예술 축제’다.

올해는 후고 폰 호프만스탈 탄생 150주년을 기려 그의 연극 ‘예더만’의 공연 횟수가 예년에 비해 늘어났다. 1920년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 연출·기획자 막스 라인하르트,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무대 디자이너 알프레드 롤러 그리고 지휘자 프란츠 샬크 등이 중심이 돼 음악제 협회를 조직하고 잘츠부르크대성당 앞 돔 광장에서 ‘예더만’을 공연한 것이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의 시초다.

예더만은 모든 사람, 평범한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며 돈을 숭상하는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죽음 앞에서 그만의 결정과 여정을 펼쳐가는 내용이다.

페스티벌은 잘츠부르크 중앙역을 기준으로 잘차흐강 남동쪽에 있는 대축제극장, 모차르트회관, 대성당, 성당 광장, 대학 강당, 성페테성당 그리고 대주교 궁전이던 레지던츠 등에서 펼쳐진다. 공식적인 프로그램 말고도 구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공연들 또한 축제의 흥을 돋운다.

이 중에서도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 공연과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콘서트가 대축제극장에서 열린다.

묀히스베르크산의 암벽을 뚫어 건축한 이 극장은 카라얀 주도하에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가 설계했는데, 거대한 역암질의 산이 공연장을 품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클래식 음악의 성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약 100m 가로로 길게 늘어진 무대와 2179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세계 곳곳의 연주자와 지휘자들에게 꿈의 무대다.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 구스타보 두다멜, 야닉 네제 세겐 그리고 리카드로 무티가 빈필하모닉과 협연했다.

올해는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빈필과 손잡고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공연하고, 게스트 오케스트라로 초청된 베를린필하모닉이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공연한다.티켓 없이 즐기는 페스티벌…독일 어디서든 '모두를 위한 오페라'
140년 역사 잇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명테너 카우프만의 '토스카' 공연
오페라 극장 앞에서 실시간 중계

獨 거장 바젤리츠, 무대미술 맡아
음악의 감동 압도하는 시각적 희열

독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주관하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1885년에 처음 시작한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최대 오페라 축제로 손꼽힌다. 여름 한 달여 동안 매일 다른 오페라 무대를 올리며 국립극장과 프린츠레겐텐 극장, 퀴빌리에 극장 세 군데에서 열린다. 어떻게 보면 시즌과 시즌 사이의 작은 시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내용이 방대하며 수준이 비할 바 없이 높은 것이 그 특징이다.

‘A Fountain That Looks to Heaven’이라는 타이틀하에 열린 2024년 오프닝은 리게티의 ‘그랑 마카브레’와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초연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2024년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프로덕션은 피에르 오디 연출의 ‘바그너:파르지팔’이었다. 2018년에 프리미어를 가진 이 연출은 오디의 미적 심미안과 극적 감수성이 극점에서 만난 파르지팔 최고의 무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매 순간 시각적 감동이 음악적 감동을 상회할 정도로 화려했다. 특히 무대미술을 담당한, 독일 신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무대다웠다.

음악적으로는 지휘자 피셰르 아담의 승리였다. 커튼콜 때 그에게 쏟아진 브라보와 박수가 이를 증명해줬다. 노장 카펠마이스터 특유의 고양된 감흥과 아담 특유의 강하면서도 색채가 빼어난 음향, 성악가들과의 긴밀한 호흡, 파르지팔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이 돋보였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에이즈 콘퍼런스를 위한 자선콘서트. 얼마 전 내한한 뮌헨 실내 오케스트라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오랜 친구인 지휘자 아이버 볼턴을 중심으로, 소프라노 한나-엘리자베스 뮐러와 테너 파볼 브레슬리크,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허의 찬조출연 등등 호화 라인업으로 채워진 공연이었다. 브레슬리크의 레하르와 슈타인바허의 치간느가 매우 개성 있었고, 볼턴의 모차르트는 명불허전이었다. 앙코르로 브레슬리크와 뮐러가 부른 레하르 ‘입술은 침묵하고’가 단연 돋보였다.

‘푸치니:토스카-모두를 위한 오페라’는 오페라 극장 앞에서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행사다. 오페라하우스 공연은 일찍이 매진됐는데, 생중계가 이뤄지는 홀 앞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최근 오페라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지휘자 유라이 발추하의 지휘 아래, 토스카 역의 엘레오노라 부라토가 전성기의 마리아 칼라스 못지않은 강력한 가창을 선보였다.

2017년 초연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탄호이저’ 프로덕션이 7년 만에 재상연됐다. 이탈리아 연출가들 특유의 집체군무, 문장 강조, 천과 공간의 조화, 장식으로서의 뒷배경, 캐릭터만 도드라지는 조명과 파스텔톤 색감의 아름다움 등이 카스텔루치의 진일보한 아이디어를 통해 훨씬 극과 일체화된 감각적인 장면들로 구현됐다. 탄호이저 역의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는 여전히 그 목소리와 표현력이 명불허전이었다.

푸치니 ‘서부의 아가씨’는 유라이 발추하의 강력하면서도 표현력이 충만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인상적인 무대였다. 이날의 주인공은 잭 렌스 역을 맡은 미카엘 폴레. 커튼콜 때까지도 다리를 저는 나쁜 컨디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니를 향한 맹목적인 집념과 불같은 사랑을 너무나 위대한 스타일로 보여줬다. 미니 역의 말린 비스트룀은 고음이 살짝 흔들렸음에도 여러모로 매력적이었다. 2만명 휘파람 소리 울려퍼지는 '숲의 극장' 베를린 광역철도시스템 ‘S반’을 타고 피헬스베르크역에서 내려 10분가량 걸으면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숲속을 거닐면 만나게 되는 거대한 원형 극장, 그곳은 바로 발트뷔네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1984년 이래 매해 시즌을 마무리하는 그곳, 야외 음악회의 전형이자 완성본인 곳.

숲속 무대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그곳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울창한 숲속에 들어선 대규모 원형 극장이었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연령대도 차림새도 다양했다. 공통점은 모두 약속한 듯이 질서 있고 조용하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이런 자연 속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이라니….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이 올해 발트뷔네의 첫 곡이었다. 관객들은 곡이 시작되자마자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해 음악 소리와 바람결에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작 전 살짝 내린 빗방울이 숲의 싱그러운 내음을 더해줬고 이따금 전해 오는 새 소리는 플루트 솔로와 절묘하게 섞여 반짝였다.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을 틈도 잠시. 이윽고 숲의 무대는 슈퍼스타 피아니스트 유자 왕의 차지가 됐다. 그녀의 외모와 복장만큼이나 화려하고 강렬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하늘 아래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발트뷔네를 둘러싼 대자연은 모든 순간에 개입해 제3의 음악을 빚어내고 있었다. 음악과 시간이 하나 되어 흐르고 흰 텐트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천천히 퍼져가는 황금빛 석양은 나른하고 목가적인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와 더없이 잘 어울렸고 덕후의 내적 흥은 한없이 고조돼 ‘볼레로’에 맞춰 환희의 춤을 췄다.

발트뷔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 곡, ‘베를린의 공기’ 아니던가. 숨죽여 음악을 듣던 2만2000명의 관객이 일제히 박자에 맞춰 발랄하게 휘파람을 부는 장관이 펼쳐진다. 스크린에는 함박웃음을 머금은 베를린 필 단원들이 비쳤고 숲속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김보라 기자/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글·사진=이진섭/이은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