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PEF 출자 전면중단…"밸류업 정책에 유탄 맞았다"

입력 2024-08-22 15:17
이 기사는 08월 22일 15:1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형 시중은행들의 사모펀드(PEF) 출자가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당국의 밸류업 정책에 맞춰 은행들이 배당 재원 확보를 위해 곳간 문을 닫고 위험가중자산 관리에 돌입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대체투자를 대거 줄이면서다. 매년 시중은행한테서 수천억원 뭉칫돈을 끌어왔던 PEF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하반기 남은 연기금 공제회들의 콘테스트에 사실상 '올인'해야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 하나은행 KB은행 신한은행 등은 하반기 계획한 대체투자부문 출자를 사실상 중단하거나 대거 축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6000억원 내외 자금을 PEF에 출자하던 신한금융지주는 상반기에 약 3000억원을 투입했지만 하반기엔 출자사업에 나서지 않기로 잠정 결정했다.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다른 대형 금융지주들도 사실상 출자 계획을 올스탑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지주사들이 돈줄을 죄는 데엔 지난해 바젤3 도입으로 강화된 보통주 자본(CET1) 관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CET1은 금융지주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보통주 자본의 비율로 정의된다. 금융감독원은 연 초부터 법정 수준인 12% 이상인 13%를 유지하도록 금융지주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상반기 대형 금융지주사들의 CET1비율은 KB(13.59, 신한(13.05%), 하나(12.79%), 우리(12.04%)순으로 13%를 간신히 넘기거나 하회하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은 일반적으로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는 PEF와 벤처캐피탈(VC) 등 대체자산에 출자하는 과정에서 RWA를 400%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수금융과 대출성 자산들이 100%를 적용되는 데 비해 4배 높은 수치다. RWA가 커질수록 CET1 비율이 낮아지다보니 대체투자보다는 인수금융 등으로 자산배분을 바꾸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금융지주들이 '밸류업' 정책에 맞춰 자사주 소각 등 자기자본을 줄여가면서 CET1의 분자도 줄어들다보니 금융지주 입장에선 이중고에 처한 셈이다.

올해 하반기 신규 펀드 조성에 나섰거나 마무리 중인 PEF들 입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매년 금융지주사들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PEF 운용사에 에쿼티 투자로 투입해왔다. PEF를 포함한 대체투자 잔액도 KB금융지주가 4조원 이상으로 가장 많고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3조원, 하나금융지주가 2조원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 시중은행에서 시작된 RWA 관리가 점차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으로 전이되면서 중소형 PEF입장에선 자금 모집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PEF들은 연기금 공제회들의 공개 컨테스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하반기 예정된 새마을금고의 출자사업 재개를 두고도 여러 PEF들이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대체투자 사업에서 풍파를 겪었던 새마을금고가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글로벌 대형 PEF 혹은 안정적인 크레딧 부문의 PEF 출자 비중을 늘릴 것으로 점쳐지면서 중소형 PEF의 보릿고개는 계속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