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연계된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나오는 가운데 자산운용사들이 해당 지수를 기반으로 상장지수펀드(ETF) 만들기에 분주하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면서도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 게 밸류업 ETF를 만드는 자산운용사들의 미션이다. 차별화를 위해 운용사끼리 연합 전선을 구축해 하나의 상품을 내놓겠다는 곳까지 나왔다.
21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거래소가 진행한 '밸류업 ETF 상품 사전 수요조사'에 자산운용사 10여 곳이 출시 의향을 전했다. 운용사들은 대부분 펀드매니저가 재량을 발휘해 적극적 운용하는 '액티브' 전략과 지수 추종의 '패시브' 전략 가운데 한 노선을 택해 상품을 낼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액티브'를 택한 곳이 절반가량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사전 수요조사인 만큼 밸류업 ETF 출시 희망 운용사는 더 늘어날 수 있다"며 "밸류업 지수가 다음달 중 공표되는 만큼 이달 중으로는 운용사들로부터 최종 수요를 확인해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과 연계된 상품인 만큼 대부분 상위 운용사들이 ETF를 내놓기로 했다.
ETF 시장 업계 선두권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밸류업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 ETF를 내놓는다. 액티브 ETF 특화 운용사인 삼성액티브자산운용과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액티브' ETF를 내놓을 계획이다. KB자산운용은 패시브와 액티브 상품을 모두 출시한다.
'펀드 명가'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시장 예상과 달리 액티브 상품만 준비하고 있다. 특히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다른 운용사와 손 잡고 '운용'과 '관리'를 분담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한투운용은 대표적 가치투자 하우스인 라이프자산운용의 운용조직에 ETF 운용을 맡길 예정이다. 한투운용은 마케팅·홍보 등 관리업무 전반을 책임지는 식이다.
'가치투자 대가'로 널리 알려진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을 앞세워 상품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배재규 한투운용 대표의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TF 상품 출시를 위해 글로벌 본사나 같은 지주·그룹 계열과 협업하는 사례는 있었어도, 관계상 무관한 두 운용사가 손을 잡는 건 이번이 첫 사례다. 다만 이 의장이 과거 동원투자신탁운용(현 한투운용), 한국투자증권의 자회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경력 대부분을 쌓은 만큼 배 대표로선 믿을 수 있는 우군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패시브를 내는 운용사들은 거래소 등 당국이 고심한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데 의미를 뒀다"며 "액티브를 내놓는 곳들의 경우, 주주환원책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종목들의 비중을 수시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장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들은 대체로 밸류업 ETF의 흥행을 점치고 있다. 자산운용 규모가 큰 연기금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지수를 벤치마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이 거래소 지수를 벤치마크 지표로 삼을 경우 지수에 포함된 종목들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
한편 교보악사자산운용과 현대자산운용 등 일부 중소형 운용사들은 한국거래소가 아닌 다른 지수사업자와 맞춤형 지수를 개발해 연말께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같은 지수를 기초(비교)지수로 삼아야 하는 만큼 큰 운용사들과 겨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에프앤가이드와 NH투자증권 등이 지수사업자로서 유사 '밸류업' 지수를 개발 중이다. 다만 해당 ETF는 당국의 당부에 따라 상품명에 '밸류업'이나 '밸류' 등 단어를 쓰진 못한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