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가 금융자산지수 개발에 뛰어들기 전까지 국내 지수사업자들은 천편일률적인 지수만 만들어낸다는 비판을 받았다. 업종별 지수, 대형주와 소형주 등 시가총액 기준으로 만든 지수가 대표적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차별화가 안 되는 지수만 만들다 보니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정체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KEDI’(Korea Economic Daily Index)는 2021년 9월 산출을 시작할 때부터 기존 지수들과 다른 방법으로 종목을 구성했다. 국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증권업계 베테랑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취합해 장기 성장성이 큰 종목을 골라내는 식이었다. KEDI가 시장점유율 1위(올해 신규 상장한 ETF 순자산 기준)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기존 사업자들이 시도하지 않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지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ETF 판도 바꿔
KEDI를 기초자산으로 한 16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지난 16일 2조29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었다. 19일 기준으로는 2조124억원이었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KEDI ETF는 2개다. 2022년 2월 상장한 ‘TIGER KEDI혁신기업ESG30’은 KEDI를 추종하는 첫 ETF다. 국내 주요 기업 CEO 1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혁신기업을 선정한 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점수가 높은 곳을 추리는 방식으로 지수를 구성한다.
같은 해 10월 상장한 ‘SOL KEDI메가테크액티브’는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한경 베스트 애널리스트 등이 유망 테마, 종목을 고르는 ‘KEDI 메가테크’ 지수를 추종한다. 이 지수는 매년 6월과 12월 정기 변경(리밸런싱)을 통해 투자 분야를 결정한다. 인공지능(AI), 로봇, 항공우주 등 인기 테마 주식을 담아 상장 후 1년10개월간 49%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해외 주식·채권 지수도 산출지난해에는 ‘KEDI 미국 국채 20년+커버드콜’을 만들며 처음으로 해외 자산을 기반으로 한 지수를 산출했다. 커버드콜 전략을 사용한 이 지수를 바탕으로 같은 해 12월 ‘SOL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 ETF를 상장했다. 커버드콜이란 주식, 채권 등 기초자산을 보유하면서 그 기초자산을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올해 2월에는 ‘TIGER 미국30년국채프리미엄액티브’를, 6월에는 ‘KODEX 미국30년국채액티브’를 상장했다.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이들 ETF 3종의 순자산은 1조1000억원이 넘는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 변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금리 하락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만기 1년 채권은 금리가 1%포인트 내리면 가격이 약 1% 오르는데, 10년 채권은 10%, 20년 채권은 20% 정도 오르는 식이다. 투자자들이 KEDI 장기채 ETF를 사들이는 배경이다.
KEDI 중에는 해외 주식으로 구성된 지수도 11개(채권 혼합형 포함) 있다. 미국 AI 관련주에 투자하는 ETF(KODEX 미국AI테크TOP10+15% 프리미엄, RISE 미국AI밸류체인TOP3Plus, SOL 미국AI소프트웨어)부터 안티에이징(TIMEFOLIO 글로벌안티에이징바이오액티브), 비만산업(RISE 글로벌비만산업Top2+) 등 분야도 다양하다.
ACE 엔비디아밸류체인액티브, ACE 마이크로소프트밸류체인액티브 등 미국 대표 기업과 관련 핵심 공급망(밸류체인)에 투자하는 ETF도 KEDI를 바탕으로 한다. 올해 상장 예정인 KEDI 추종 ETF도 10여 개에 달한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KEDI는 차별화된 시도로 AI 테마와 커버드콜 ETF 시장의 개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