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공고에서 배우고 성공한 기업인 등 수많은 동문이야말로 할아버지께서 대한민국에 남기신 선물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에서 만난 유은령 유한학원 이사(63·사진)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라며 할아버지가 상상하셨던 큰 꿈이 이뤄진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에 거주 중인 유 이사는 이날 유한공고 총동문회가 마련한 유한학원 개교 60주년 기념 <유일한의 후예들2> 출간식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했다.
유 이사는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손녀이자 ‘유일한’ 혈육이다. 학교법인 유한학원과 보건장학회 이사로서 수시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이사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유 이사는 “할아버지는 항상 올바름을 구별하고 큰 이익보다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셨다”며 “유한공고와 유한대학의 운영에 할아버지의 뜻과 이상이 잘 지켜지는지 관심을 쏟는 게 이사로서 내 책무”라고 강조했다.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유 박사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있다는 유 이사는 “제 미국 이름(일링)과 고모 이름(유재라)은 당시 할아버지를 품어준 미국 가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며 “할아버지는 신념과 원칙이 있었으며 정직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이 탁월해 학창 시절에 인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 박사가 유일하게 1만달러를 남긴 혈육이기도 하다. 유 이사는 “할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었지만 늘 회사(유한양행) 직원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며 “그런 할아버지가 유산을 남겨 오히려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 박사는 아홉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사업가로 성공한 뒤 일제 강점기 시절 헐벗고 굶주린 고국의 동포를 위해 건강해야 독립운동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한학원을 세워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유한공고는 유 박사가 사재를 털어 1952년 설립한 기술학교다. 고려공과 기술학교로 출발했으나 1964년 유한공업고등학교로 개명했다.
이날 출판기념회를 준비한 이원해 유한공고 장학회 이사장(대모엔지니어링 대표)은 “유 박사를 본받은 1만9000명의 유한공고 동문이 사회 각계에서 기업인과 의사, 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유일한의 후예들 3, 4권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경석 중앙에스코 대표는 “유 박사를 만났을 때 검소한 옷차림과 낡은 구두에 충격을 받아 평생의 울림으로 남아 있다”며 “유한의 동문이라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유 이사는 “유한학원 동문은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통로이자, 그의 가르침과 영향력을 살아 숨쉬게 하는 리더”라고 화답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축사를 마쳤다. “We are all descendants of my grandfather. (우리는 모두 할아버지의 후예들입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