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21일 09:4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플랫폼 유니콘 기업들이 미국 증시 상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행 플랫폼 야놀자에 이어 패션 플랫폼 무신사도 미국 증시 상장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선 유니콘 기업의 몸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IPO본부장은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이 비교기업을 정해 증권신고서에 '조단위' 기업가치를 정한 논리를 적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한국 대신 미국으로 가는 유니콘2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가치 3조원대 무신사가 미국 나스닥 상장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과 북미 시장 확대를 노리는 만큼 해외 증시 상장 가능성을 열어놨다. 지난 6월 네이버웹툰의 모회사인 미국 법인 웹툰엔터테인먼트가 기업가치 3조8000억원에 나스닥에 입성한 점도 자극이 됐다. 무신사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시장을 특정 지역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상장 건수는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5년간 우회상장인 스팩(SPAC) 상장 기업을 포함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은 모두 5곳으로 집계됐다. 쿠팡(2021년)과 네이버웹툰(2024년)이 직상장 방식으로 각각 NYSE와 나스닥에 입성했다.
더블유게임즈 자회사 DDI(2021년) 및 한류홀딩스(2023년), 캡티비전(2023년) 등도 나스닥에 상장했다. 2010년~2016년까지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이 유일하게 미국 NYSE에 상장한 것을 비교하면 크게 늘었다. 유니콘 기업, 한국 상장 쉽지 않아
무신사와 야놀자의 미국행을 고려하는 건 '코리아 디스카운트' 직격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섬유·의복기업 PER은 9.25배로 역대 최저치 수준으로 하락했다. 무신사는 상장 비교기업으로 국내 및 해외 패션기업을 설정해야 하는데, 비교할 만한 마땅한 국내 기업이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발행사와 주관사는 조단위 기업가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통상 기업가치를 이자·세금·감가상각비 차감전 영업이익으로 나눈 EV/EVITDA방식이나 시가총액을 매출액으로 나눈 PSR(주가매출액비율) 방식을 사용한다. 신고서에는 미래 실적 추정치도 적어야 한다. 상장 이후 사업보고서에 추정치와 실적치를 비교하고 괴리율이 10% 이상인 경우 원인을 상세히 적어야 한다. 여행 플랫폼 기업 야놀자도 마찬가지다. 비교기업인 하나투어의 주가수익배수(PER)가 12배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런 과정이 없이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과 논의를 통해 밸류가 맞으면 상장할 수 있다. 대신 신고서 허위 기재 시 집단소송과 주주대표소송을 제기당할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국내에 상장하는 기업가치가 같다고 하더라도 대형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상장을 선택할 유인이 크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지난 2021년 유니콘 기업의 미국 상장을 막기 위해 시가총액 상장 규정을 만들었다.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어서면 적자기업도 상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이 상장 제도를 이용한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이 한 곳 뿐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