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외치더니…"차이나 머니는 좋아" 아르헨의 딜레마

입력 2024-08-19 09:11
수정 2024-08-1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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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손절 선언'을 반복해온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중 간 '줄타기 외교'를 확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자유주의자인 그는 공산당 국가인 중국을 멸공 대상으로 여겼지만, '차이나 머니'를 얻기 위해서 실리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공산주의에 대한 확고한 반대자인 밀레이 대통령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투자와 무역이 아르헨티나의 미래에 필수적'이라며 중국에 대해 보다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반중 발언을 이어갔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산국인 중국과 단교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작년 12월 65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했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에 오른 뒤엔 잇단 친중 행보를 보였다. 중국은 올해 6월 50억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 갱신으로 화답했다.

차이나 머니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고갈된 외환 보유고에서 자금을 상환해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났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번 스와프 연장이 재정적 안정을 제공했다"며 중국에 감사를 표했다. 이어 "중국과의 상호 존중이 아르헨티나의 발전과 번영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의 라틴아메리카 프로그램 디렉터인 벤자민 게단은 "그는 외교 정책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훈련되지 않았지만 취임 이후 중국과 가장 잘 지내고 있는 지도자"라며 "경제학자였던 밀레이가 중국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브라질에 이어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무역 파트너다. 양국의 교역 규모는 작년에 약 20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과의 무역 규모(140억달러)를 한참 웃돌았다. 중국이 아르헨티나의 광업, 석유·가스, 금융, 건설 등에 투자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대중 수출은 지난 20년 동안 8배나 증가했다.

컨설팅 회사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세르지 라나우 경제학자는 "2015년 이후 중국의 (아르헨티나에 대한) 해외직접투자 규모가 500% 증가해 30억달러를 넘겼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엔 디아나 몬디노 아르헨티나 외무장관이 중국 외교관들과 함께 중국 기업 칭산이 지분 일부를 투자한 8억 달러 규모의 리튬 프로젝트의 기공식을 기념했다. 또 다른 중국 기업인 쯔진마이닝과 간펑리튬도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사업을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농업 부문도 친중 관계 덕분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산 대두, 소고기의 주요 소비국인 중국이 최근 아르헨티나산 밀까지 수입하기 시작하면서다. 아르헨티나는 15년 전 중단했던 옥수수 수출도 재개할 예정이다. 중국 기업들은 아르헨티나에 남미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도 건설 중이다. 한 주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정책에서) 기본이다"며 "중국과 친구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문제다"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가 완전히 친중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의 우방국이었던 미국이 여전히 최고 동맹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밀레이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외교연합체 브릭스(BRICS)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히려 대신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파트너가 되기를 요청했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중국산 제트 전투기 구매 제안을 포기하고, 미국산 제트 전투기를 구매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기업 산시 석탄·화학 산업의 아르헨티나 최남단 항구 건설 프로젝트를 보류시켰다. 양국이 2022년 합의한 이 프로젝트는 중국이 남극 대륙에 접근하는 전략적 위치와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는 중요한 해운로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직 정부 관료였던 단테 시카는 WSJ에 "우리와 같은 국가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아르헨티나의 줄타기 외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우려하는 대목은 파타고니아 지역에 위치한 중국의 우주 관련 연구기지다. 미국은 이 외딴 기지가 미국 위성을 표적으로 삼아 전 세계를 감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