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 5년간 누적 적자가 100억원을 넘는 로스쿨도 나왔다. 지방뿐 아니라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제외한 수도권 로스쿨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 로펌의 SKY 선호가 심해지자 중도에 자퇴하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로스쿨 중도 이탈과 이로 인한 만성적 재정난이 예비 법조인을 양성하는 사법시스템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하대 5년간 124억원…적자 최대19일 한국경제신문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주요 로스쿨 등록금 총액 및 교원 인건비·장학금 지급액 자료’에 따르면 15개 로스쿨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800억원대 적자를 냈다.
최근 5년간 누적 적자액이 가장 많은 곳은 인천에 있는 인하대로 124억7800만원에 달했다. 서울시립대 112억5500만원, 부산대 88억9900만원, 강원대 87억8100만원, 제주대 79억5300만원 등 지방과 서울을 가리지 않았다. 자료 제출을 거부한 10개 로스쿨 가운데 서울대와 연세대를 제외한 대부분이 적자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로스쿨 관계자는 “실제 적자 규모는 교직원 임금, 컴퓨터 기반 변호사 시험(CBT) 도입 비용, 운영 유지비 등을 합산하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원이 50명 안팎인 로스쿨은 대학 위상과 명예를 위해 적자를 떠안고 로스쿨을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방 변호사 시장 위축이 지방 로스쿨생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서울과 동반 증가세를 보이던 지방 변호사 수는 올해 처음 감소세로 전환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3년 4058명이던 지방 변호사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8440명으로 2배 넘게 늘었지만 이달 기준 7274명으로 13.8% 줄었다. 의대 닮아가는 로스쿨…반수생 급증로스쿨 재정난의 주요 원인으로는 상위 로스쿨로 진학하기 위한 ‘로스쿨 반수’가 꼽힌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자퇴한 학생은 2020년 151명에서 2022년 208명으로 37.7% 늘었다. 대부분 지방·중소 로스쿨을 다니다 SKY 로스쿨로 재입학한 사례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분석 결과 작년 로스쿨 신입생의 43.6%가 ‘반수’를 염두에 두고 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에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률시장의 대형로펌 독점 현상과 맞물려 있다. 변호사 시장 규모는 로스쿨 도입 후 두 배 이상인 8조원대로 커졌는데 국내 6대 로펌이 전체 법률시장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로펌은 주로 SKY 로스쿨 출신을 선호한다. 본지 전수 조사 결과 지난해 김앤장 광장 태평양 율촌 세종 화우 등 6대 로펌 신임 변호사 257명 중 196명(76.3%)이 SKY 로스쿨 출신이었다. 서울대 로스쿨 출신이 101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연세대 52명, 고려대 43명 순이었다. 로스쿨 “정원 규제 풀어달라”지만…10여 년간 지속된 등록금 동결도 핵심 재정 악화 요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5개 로스쿨의 연평균 등록금은 1442만원으로 전년 대비 1.2%(16만7000원) 인상에 그쳤다. 김명기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사무총장은 “정부에서 등록금은 올리지 말라고 하고 교원·장학금은 늘리라고 요구하니 로스쿨이 자체적으로 적자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로스쿨 정원 확대와 외국인 유학생 유치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2017년까지 치러진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외국인도 국내 법조인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했지만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2012년 기준 시험에 합격한 외국인은 3명이며 올해는 합격자가 단 한 명도 없다. 한 수도권 로스쿨 교수는 “대부분 학교가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스쿨 교수들에게 학부 수업까지 병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교원이 증가하는 만큼 학생도 유연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로펌업계 양극화가 굳어진 상황에서 지방 로스쿨 정원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 의문을 제기했다.
권용훈/이혜인 기자/사진=임대철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