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적대국 영토 점령' vs '자유·평화·번영의 통일'

입력 2024-08-18 17:15
수정 2024-08-19 00:06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입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우리가 꿈꾸는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는 분명합니다. 국민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행복한 나라, 창의와 혁신으로 도약하는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국제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선도하며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 바로 이것이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윤석열 대통령)

남북한 지도자의 발언만으로도 현 한반도 상황은 정확히 확인된다. 김정은은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고 무력으로 한국 영토를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평화·번영의 통일된 국가를 건설하되 국제사회 규범과 원칙에 따라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반통일·반민족·반평화’를 내세운 상황에서 한국은 무력을 배제한 ‘자유와 안전, 창의와 혁신, 평화와 번영’을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한 통일 방안을 명확히 한 것이기도 하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기존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구체적 추진 전략 없이 자주·평화·민주를 기본 원칙으로 삼고 마지막 단계인 ‘통일국가 완성’ 시 국가 형태도 규정하지 않았다. 이번 통일 독트린은 자유통일 대한민국을 최종 단계로 규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명확히 반영하고,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정당한 추진 전략도 제시했다. 일부에서 북한 체제 파괴 공작이라고 비판하는 북한 인권 개선 노력과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는 유엔 인권선언에 규정된 합법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담론의 국제 확산 노력이 포함됐다. 국가 간 이해가 대립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한반도 통일은 준비부터 전개, 이후 모든 과정에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그간 통일 담론 확산이 제한된 것이 사실이다. 작년 8월 한·미·일 정상이 만난 캠프데이비드 회담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 오히려 이례적이다. 한국이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를 상대로 통일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임을 설파하고, 그들 국가의 이해를 구하는 적극적 시도가 요구된다. 북한이 ‘통일 포기 선언’을 한 가운데 영구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이 배가돼야 할 분야다.

8·15 통일 독트린은 북한을 흡수하거나 북한 정권을 붕괴하려는 선언이 아니다. 북한이 무력으로 한국을 점령하겠다는 파괴적 공세에 맞서는 것으로, 국제법이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틀에서 이뤄진 것이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는 반응적 통일정책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선제적으로 실천할 때다.